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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놀라운 파죽지세 성장세

필자가 미국에 있었던 1990년대 초반에 PC 브랜드 게이트웨이(Gateway)2000은 파죽지세의 성장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당시 컴퓨터 잡지를 보면 게이트웨이 광고가 많은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들에게 어떤 PC를 살 것인가에 대해 문의를 하면 왜 게이트웨이를 사지 않느냐고 반문하곤 했었다. 그 이유는 가격 대비 성능, 즉 가치가 단연 높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회사나 집으로 배달되는 게이트웨이 PC의 포장 박스를 보면 홀스타인 젖소의 얼룩무늬로 뒤덮여있었다. 그당시만 하더라도 PC는 이미 첨단 하이테크는 아니었지만 컴퓨터 업체들은 자신을 하이테크에 포지션하고 싶어했다. 그런 의미에서, 약간은 촌스럽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젖소 무늬를 회사 상징으로 사용한 것 자체가 참신한 시도였다.

지금도 회장을 맡고 있는 창업자 테드 웨이트(Ted Waitt)가 친구와 함께 이 회사를 만든 것은 1985년이었다. 웨이트는 빌 게이츠처럼 PC 판매사업을 하기 위해 다니던 아이오와 대학을 중퇴하고 세 쪽짜리 사업계획서와 중고 컴퓨터 그리고 할머니의 보증으로 빌린 돈 1만 달러로 시골 집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통신판매를 하면서 고성장을 하다가 인터넷 광풍이 본격 일기 전인 1989년에 컴퓨터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게이트웨이는 또 컬러 모니터를 기본 패키지에 처음으로 포함시켰으며 3년 제품 보증도 처음으로 실시했다. 이러한 파격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1993년에는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다. 1985년에 창업을 했으니 8년만에 포춘500대 기업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동년에 나스닥에 주식을 상장하여 테드 웨이트를 부자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미국 경제의 폭발적인 활황과 PC 사업의 대호황으로 게이트웨이는 고속성장세를 유지하였지만 2000년부터는 경기 과열이 냉각되면서 회사 상황은 급전직하 악화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부터 회사 수익상황은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초반까지는 게이트웨이의 주가가 60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폭락세를 거듭하다가 2003년에는 3달러 수준까지 내려갔던 것이다.

2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게이트웨이의 악몽

고성장을 누리던 게이트웨이는 어떻게 하다가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게이트웨이보다 1년 먼저 1984년에 세워졌고 게이트웨이보다 1년 먼저 1992년에 포춘 500대 기업이 되었던 델 컴퓨터는 아직도 건재한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델 컴퓨터 회장인 마이클 델은 최근 포춘지에서 선정한 나이 40세 미만의 기업가중에 가장 부자로 선정되었지만 게이트웨이의 테드 게이트는 부자 리스트를 아무리 찾아봐도 그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게이트웨이는 한마디로 말해 델 컴퓨터와 같은 막강한 경쟁자와의 싸움에서 졌던 것이다. 한 회사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방법이 있다. 품질은 유지한 채 비용을 최대한 낮추어 코스트 리더십(cost leadership)을 가질 수 있는가 하면 최고의 기능으로 첨단 선도 리더십을 가질 수도 있고 또 광고 등을 통해 막강한 브랜드 파워로 리더십을 가질 수도 있다. 새로운 PC 부품이 표준화가 되자마자 이를 부품으로 채택하여 성능은 높이되 비용은 절감하고 또 고객이 원하는 대로 부품을 바꿀 수 있는 맞춤형 PC를 만족스럽게 만들어내는 델 컴퓨터를 게이트웨이가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이트웨이는 그전에 매장 없이 통신판매나 온라인으로 사업을 하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지만 1996년부터는 게이트웨이 컨트리라는 오프라인 매장들을 오픈하기 시작했다. 물론 판매 채널이 수백개로 많아지니 매출은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매장 시설에 대한 투자비나 매장 운영비용에 비하면 매출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반면에 델 컴퓨터는 매장을 오픈하지 않고 기존의 무점포 판매 방식을 고수했다. 게이트웨이는 판매채널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했다가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그래서 게이트웨이의 시장 점유율은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고 게이트웨이의 주가 또한 폭락했다. 2000년 초반에는 주가가 60달러 수준이었으나 그 이후 폭락하여 2002년에는 3~5달러 수준까지 내려갔던 것이다. 게이트웨이는 긴축경영을 하기 위해 인력을 감축하고 해외사업을 축소했으며 그 결과 시장 점유율은 더욱 떨어졌다. 미국의 경우 2001년 시장 점유율은 7.4%였는데 2002년에는 5.6%로 더욱 떨어졌다.

델과의 정면 승부에서 진 게이트웨이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주된 경쟁자를 애플로 바꾸었다. 그래서 2002년 하반기에 애플의 iMac을 공략하기 위해 Profile4 라는 신모델을 출시했다. 가격은 아이맥에 비하면 몇 백 달러 저렴했지만 성능이 많이 떨어져 애플과의 전쟁에서도 지고 말았다. 잘 알듯이 애플의 경우에는 애플 컴퓨터를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팬 고객들이 있다. 게이트웨이도 젖소 이미지로 애플처럼 컬트 브랜드(cult brand)로 격상되기를 원했지만 게이트웨이의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이트웨이는 과연 회생할 것인가

회생을 모색하던 게이트웨이는 PC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004년에 이머신즈(eMachines) 회사를 2억 3,500만 달러에 인수하여 볼륨상으로 미국에서 3번째로 큰 PC 회사가 되었고 전세계적으로는 10번째로 큰 PC회사가 되었다. 또 게이트웨이는 PC 메이커에만 머물지 않고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플라스마TV, 시스템, 네트워킹 분야로도 진출하고 있다. 그리고 집안의 디지털 가전과 겸해서 사용할 수 있는 패밀리 룸 미디어 PC 모델을 출시한다거나 가정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기 위한 PC도 새로 출시하는 등 자신의 회사를 점차 가전 회사 형태로 바꾸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즉 PC와 TV의 수렴 추세에 적극 편승하는 전략인 것이다.

2004년 10월 게이트웨이의 주가는 5달러를 약간 상회하고 있다. 물론 3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던 때에 비하면 많이 회복된 상황이긴 하지만 아직 충분히 회복을 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러한 주가 회복은 게이트웨이 자체의 노력과 사업 실적도 반영되긴 하였지만 미국 주식 시장의 전반적인 회복이 더 큰 이유일 지도 모른다. 게이트웨이가 이러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 사업구조 개편 등 다양한 노력으로 인해 1990년대의 영광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같은 PC 업종으로 1980년 중반 비슷한 시기에 회사가 세워졌고, 199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포춘 500대 기업 진입, 비슷하게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누리다가 2000년을 전후하여 엄청난 괴리가 생긴 두 회사를 보다 보면 기업들의 엇갈린 운명과 흥망성쇠를 여실히 보는 듯 하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 이글은 LG엔시스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