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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창의력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혼동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두 단어의 차이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상상력은 하나의 아이디어이고 하나의 꿈이다. 반면에 창의력은 이러한 상상력이 다른 것과의 차별성을 가지고 또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실행력도 포함한다. 따라서 어렵게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의 것과 비슷하다면 창의성이 없는 것이다. 또 그 아이디어가 어떤 형태로 구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상력에 그칠 뿐 창의력은 아니다. 창의력의 영어 표현이 originality(독창성)이나 creativity인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물론 상상력은 영어로 imagination이다. 존 레논의 유명한 노래 이매진(imagine)을 한번 들어봐라.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지 않는가?

필자는 마케팅 분야의 일을 해서 그런지 다방면으로 생각을 해보는 상상력 그리고 차별성과 실행이 수반되는 창의성 있는 일을 요구받는다. 여러 회사에 가서 컨설팅을 해줄 때 그 회사의 기존 사업이나 일하는 방식, 그리고 고정 관념을 깨고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고 새로운 일을 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면 또 다른 회사에 가서 새로운 일에 대해 컨설팅을 한다. 컨설팅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별개의 프로젝트이다.

필자는 경영대학원에서 강의를 하지만 매학기마다 같은 강의를 하지 않는다. 같은 강의를 하면 나 자신에게 더 편할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우선 재미가 없다. 한 학기 전에 강의했던 것을 또 되풀이 하는 자신이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목 이름은 같을 지 모르지만 강의 내용은 다르다. 새로운 강의를 준비하다 보면 흥미로운 토픽과 자료들을 찾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대기업에서 경험한 나의 창의력

필자가 그전에 근무했던 대기업, SK에서 이런 창의력을 마음대로 펼칠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1996년이었다. SK는 SK텔레콤(당시 이름은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고서 그룹의 신규사업 방향을 정보통신으로 정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SK내 많은 사람들이 정보통신 사업 자체를 추진하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정보통신 자체도 중요하지만 SK그룹사의 기존 사업과 접목시켜 부가가치를 늘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런 방향으로 신규 사업을 개발하기 위해 신규 프로젝트 팀이 만들어졌다. 그 팀 이름이 복합네트워크 사업추진팀이었다.

복합네트워크 사업추진팀이 하는 일은 이랬다.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네트워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신규 사업을 벌이자는 것이다. 중요한 네트워크로는 정보통신네트워크, 유통물류네트워크, 그리고 인적네트워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정보통신네트워크중 무선네트워크는 SK텔레콤이 가지고 있지만 유선네트워크가 없으니 광파이버망을 더 깔아야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유통네트워크로는 SK(주)의 주유소 네트워크와 다른 계열사의 유통점포들이 있었는데 이곳에 정보통신을 접목하면 유통점포들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적네트워크란 바로 고객의 데이터베이스를 말하는 것인데 TV 광고나 신문 광고 같은 매스 마케팅만으로는 이제 역부족이기 때문에 고객의 데이터베이스를 잘 구축하여 1:1 마케팅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유통네트워크에 정보통신망을 깔고 엔터테인먼트와 쇼핑 기능을 강화하여 결제를 하면 될 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사업의 개념과 추진 방향은 물론 우리가 보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을 불러모아 어떻게 회의하여 어떤 기발한 신규사업 아이디어를 도출할 지가 문제였다. SK㈜내에서 20명의 사람들을 불러모아 팀을 구성했다. 물론 지식이나 경험을 보았을 때 복합네트워크 사업에 딱 적합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정유.에너지 회사였기 때문에 화공과 출신이 압도적이었고 정보통신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리더 역할을 하였던 필자는 100권의 책을 선정하였다. 정보통신, 유통물류, 마케팅, 특히 고객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마케팅, 새로운 트렌드 분야의 책중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선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20명의 직원이 책 5권씩을 골라 읽고 요약을 해서 우리가 추진하려는 사업에 대한 시사점을 뽑도록 했다. 물론 이러한 책 요약을 매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도록 하고 서로 토의를 하도록 했다. 토의를 하면서 나온 좋은 아이디어들은 계속 정리하여 신규사업 아이디어 리스트를 늘려나갔다. 3주 정도 이런 식으로 정리하다 보니 신규사업 아이디어가 300개나 되었다.

이렇게 나온 신규사업 후보들을 놓고 다시 한번 엄선을 해보니 100개 정도가 괜찮았다. 이 하부 팀을 만들어 이 100개에 대해 사업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었고 사업계획서를 어떻게 써야하는 지 모르는 직원도 많았다. 사업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관련 책도 많이 읽어야 했지만 외부의 관련자, 전문가와도 많이 만나야 했다. 막무가내로 만나자고 전화를 해서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사업성을 어느 정도 검토하면 상부층에 보고를 한다. 그러면 추가로 더 조사를 해야겠다든지 아니면 이 사업은 안되겠다고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열심히 만든 사업계획서가 순식간에 휴지통에 들어간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업은 정밀 검토에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면서 신규사업의 구도는 더욱 명확해졌고, 15개 사업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주유소를 활용한 유통사업, TTL존 사업, 자동차의 지리정보제공 사업, OK 캐쉬백 사업 등이 바로 이런 상상력, 창의력 과정을 거쳐 나온 사업들이었다.

다른 업종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어라

이렇게 신규사업을 추진하면서 배웠던 것은 많았다. 엄청난 자료, 엄청난 사람, 엄청난 회의, 엄청난 생각, 엄청난 사업계획서 검토가 잇따랐다. 더구나 우리 사업은 정보통신, 유통물류, 고객데이타베이스를 동시에 고려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요구되었다.

특히 업종이 다른 곳에서의 사업 아이디어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어떤 업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그 업종의 선두 기업, 경쟁 기업들이 어떻게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물론 이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벤치마킹을 해봐야 후발 주자에 불과하다. 선점을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업종에서 잘 하고 있는 회사를 벤치마킹하여 이것을 자사에 잘 적용한다면 상당한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물론 업종이 다르니 다시 한번 더 생각하고 변형을 해야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지면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창의력의 파워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창의력은 상상력보다 더 어렵다. 그냥 다방면으로 마음대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성과 실행력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상상력을 무시하면 절대로 안된다. 너무 실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 기발한 생각들이 튀어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상상력을 가동해라. 그리고 압축 과정을 거쳐 아이디어를 선별하여 실행에 집중하면 당신은 바로 창의력 있는 회사의 중요한 인재가 되는 것이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및 이마스(www.emars.co.kr) 운영자

* 이글은 아이앤아이스틸 사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