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siness Knowledge is Power

올해 들어 방영된 영화중에 [에비에이터]라는 영화가 있었다. 미국 항공사 TWA의 소유주였던 하워드 휴즈의 일생을 다룬 영화였다. 이 항공사는 한때 경쟁사였던 팬암(PanAm)과 함께 미국을 주름잡던 항공사였지만 1978년 항공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 규제가 풀리면서 대지각 변동을 가져왔다. TWA와 팬암을 비롯하여, 이스턴, 미드웨이 항공사는 파산한 반면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델타는 크게 부상했다.

한편 값비싼 항공 요금과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던 고가 항공사와는 별도로 저가 항공사(Budget Airlines)가 점차 기반을 넓혀 나갔는데 사우스웨스트항공사(Southwest Airlines)가 대표적이다. 1971년 사업 시작 이후 매출 성장률과 순이익률이 탁월했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사우스웨스트항공사에 대한 신뢰와 인기는 더욱 높아져갔다. 이 회사는 무차임 경영으로 신용등급은 항공사중에 최고이며,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 뛰어난 서비스로 정평이 나있다. 좀더 자세히 보자.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경쟁사는 철도·고속버스

SWA의 목표 고객은 고급 서비스로 선두를 다투는 유나이티드항공사나 아메리칸항공사처럼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높은 가격이 부담스러워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동차, 버스,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목표고객으로 했다. 따라서 SWA의 경쟁상대는 기존 항공사가 아니라 한 등급 아래인 고속버스와 철도회사였다.

이런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SWA가 택한 기본전략은 저렴한 가격의 단거리 노선 운항이었다. 국제선이나 국내장거리 노선은 기존의 대형항공사들이 차지하도록 하고 SWA는 단거리 운항의 니치 시장을 집중적으로 일관되게 공략한 것이다.

혁신적 방법에 의한 저비용 리더십 모델

물론 이러한 고객을 대상으로 거품 없는 낮은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비용을 절감해야 가능하다.
우선 SWA는 다른 대형 항공사가 채택하고 있던 허브앤스포크(hub-and-spoke) 방식을 과감히 버렸다. 허브앤스포크 방식이란 주요 거점 대도시를 중심으로 여러 소도시로 비행기를 운항하는 방식을 말한다. 따라서 어떤 소도시 사람이 다른 소도시로 가려면 부근의 대도시로 가서 목표 소도시에 가까운 대도시로 가고 또 목표 소도시로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한다.

그렇지만 SWA는 고객에게 빠르고 편하게 그리고 저렴하게 여행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포인트투포인트(point-to-point) 방식을 채택했다. 소도시에서 다른 소도시로 직행 항로를 개발한 것이다. 따라서 비행기의 실제 운항시간이 하루 11.5시간에 달해, 다른 항공사들의 6.6시간에 비해 월등히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 모름지기 비행기는 하늘에서 비행하는 시간이 길어야 수익이 난다.

이 항공사는 정시 도착과 비용절감을 위해 비행기 기종을 보잉 737로 통일했다. 비행기 고장시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소속의 정비원이라면 누구나 정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비행기 유지 관리 비용과 훈련 비용, 부품 재고를 최소화하는데 매우 유리하다.

이런 고객을 타겟 고객으로 잡았으니 SWA에는 기존 항공사처럼 퍼스트 클래스나 비즈니스 클래스가 없다. 그리고 자리도 미리 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오는 사람이 아무데나 앉는다. 또한 SWA에서는 비행시간이 짧아서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땅콩과 스낵 종류만 제공한다. 보통 기내식이 승객 1인당 5달러인 데 반해 SWA는 1인당 20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차별화되고 독특한 서비스

항공료가 낮다고 해서 서비스 수준도 낮았다면 SWA의 평판이 이렇게 좋을 리 없다. 편의성,정확/신속성, 안전성 관점에서 탁월한 서비스로 평가받고 있다.

우선 편의성 측면에서 SWA의 큰 특징은 다양한 비행 스케줄에 있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가는 운항 횟수가 다른 항공사에 비해 훨씬 많다. 운항 횟수가 많다는 것을 승객들이 알게 되면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므로 이 항공사를 더욱 선호하게 된다. 이 회사의 명민함과 유연성을 반영하는 혁신적 아이디어 중 하나는 1994년부터 시작한 무탑승권 여행인데 이제 하나의 산업표준이 되어버렸다.

둘째는 정확성과 신속성에 있다. SWA는 “시간 절감 = 낮은 가격 = 높은 이익”이라는 방정식을 업무에 철저히 적용하고 있다. SWA는 업계 평균의 절반인 20분 이내에 비행기를 재운항시킨다. 40~55분이나 걸리는 다른 항공사에 비해 35분 정도 빠르기 때문에 SWA가 필요로 하는 비행기 수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를 하고 있다. 비용절감 효과가 10억 달러나 되고, 이로 인해 저렴한 항공료가 가능했다.

SWA는 아침식사를 승객들에게 비행기 안이 아니라 공항 터미널 게이트에서 제공한다. 비행기에서 식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비행기 청소시간이 줄어들며 이는 비행기 가동시간을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수하물 처리속도도 빨라서 도착한지 15~20분 정도면 다시 이륙할 수 있을 정도다.

셋째는 안전성이다. SWA가 보유하고 있는 제트 항공기 400대의 평균기령은 9.6년으로, 미국 주요 10대 항공사들 중 가장 낮은 수치이다. 이러한 낮은 평균기령 때문에 단 한건의 사망사고도 없는 놀라운 안전운항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높은 안전도는 SWA에 대한 고객들의 높은 신뢰도로 이어지고 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을 모방하다가 실패한 콘티넨탈항공

어떤 회사가 잘되면 모방하는 게 업계의 생리다. 그런데 자칫하면 '양다리 걸치기'로 진행되어 정체성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게 된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컨티넨탈 항공이다.
컨티넨탈 항공사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어떻게 잘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는 양다리를 걸치기로 했다. 풀 서비스 항공사로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면서, 컨티넨탈은 다수의 지점 대 지점(point to point) 항공노선에서 사우스웨스트항공에 대항하기로 했다. 그 항공사는 새로운 서비스를 컨티넨탈 라이트(Continental Lite)라고 이름지었다. 식사와 1등석을 없애고 출발 횟수를 늘리며 요금을 낮추고 공항 게이트에서의 정비시간도 짧게 했다.

하지만 컨티넨탈은 다른 노선들에서는 풀 서비스 항공사로 남아 있었다. 따라서 여행대리점은 여전히 유지해야만 했고 수하물 이동 시 많은 혼란이 초래되었던 것이다. 그결과 사우스웨스트항공과 같은 혁신적인 비용 절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고객 서비스가 저하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 회사에서 고급 서비스와 저급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유럽에서도 이지젯과 라이언에어가

미국에서 인기 몰이를 한 저가 항공사 모델은 유럽으로 전파되어 이지젯(EasyJet)과 라이언에어(RyanAir)를 선두로 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 이지젯 사의 창업자인 스텔리오스 역시 사우스웨스트항공처럼 이지젯을 비행기회사라기 보다는 버스회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지젯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터넷과 전화로만 예약을 받는데,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거나 한달 전에 예약하면 가격이 더욱 할인이 된다.

아일랜드의 저가 항공사인 라이언에어 역시 가장 저렴한 항공사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지젯이 그나마 대도시의 공항들을 이용하는 반면, 라이언에어는 중소도시의 작은 공항들만 이용하기 때문에 비록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가격 경쟁력은 더 높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저가 항공사간의 피말리는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제 비행기는 부자들만 타는 운송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서비스만 제공하는 저가 항공사 출현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뒤늦기는 했지만 이러한 저가 항공사 회오리는 불가피하게 보인다.

* 이글은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2005년 4월)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