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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시계는 현재 전 세계 시장의 과반을 장악

오메가, 롤렉스, 파텍 필립, 태그 호이어, 론진, 오드마르스 피게, 예거 르쿨트르, 브리겟, 라도, 쟈크드로, 블랑팡, 피아제, 카르티에, 바쉐론 콘스탄틴, 브라이틀링, 프랑크 뮬러.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시계 브랜드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스위스 회사가 만드는 시계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로만손 시계 브랜드가 있지만 전 세계의 시계는 스위스와 일본이 장악하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시계의 총액 116억 달러 중 60%가 스위스산이다.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이 아닐 수 없다. 스위스에서 시계는 화학제품, 기계류에 이어 스위스의 3번째 수출 품목이다.

1970년대 후반에 스위스 시계는 최대 위기에 직면

스위스의 시계 산업의 역사는 400여년에 이를 정도로 오래되었다. 16세기 탄압받는 신교도인 위그노족들이 종교 자유를 위해 제네바에 몰려들면서 금 세공업자들도 따라 들어와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후 길드를 중심으로 하여 탁월한 성능을 가진 스위스 시계가 만들어진 이후 스위스 시계는 정확도와 고가 브랜드로 1960년대까지 대단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1970년 후반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시간이 정확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미국의 타이맥스(Timax) 시계와 일본과 홍콩의 전자식 쿼츠(quartz) 시계가 스위스 시계를 순식간에 몰아냈던 것이다.

1974년에서 1983년 사이에 스위스의 시계 산업이 얼마나 몰락했는지 한번 보자. 1974년 스위스 산 시계의 판매량은 9,100만개였으나 1983년에는 4,300만개로 뚝 떨어졌다. 그래서 세계시장점유율도 43%에서 15%로 떨어지면서 일본과 홍콩에 이어 3위가 되었다. 스위스의 시계산업 종사자도 9만 명에서 4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스위스의 대표 산업으로 군림했던 시계 산업이 갑자기 사양산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고자 스위스의 유력 시계 제조업체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 컨소시엄의 중심 업체인 ASUAG와 SSIH는 합병하여 ASUAG-SSIH 그룹이 되었고 하이엑 엔지니어링의 대표였던 니콜라스 하이엑이 합류하면서 SMH 그룹으로 다시 태어났다. SMH 그룹은 하이엑의 주도하에 스와치 브랜드는 급성장을 하였고, 이 회사는 1998년에 스와치그룹으로 이름을 아예 바꾸었다.

스와치의 시계 개발 전략

스와치는 어떻게 하여 일본 시계들을 다시 제압하고 스위스 시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었을까. 시계 개발 전략을 한번 보자.

우선 시계 부품 수를 확 줄였다. 기존 아날로그 시계에는 91개에서 125개에 이르는 부품이 들어갔다. 그러나 스와치는 일본에 대해 경쟁력을 갖기 위해 초박형 시계를 만들려고 했고 이를 위해서는 부품 수를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기술적 어려움이 컸지만 스위스의 축적된 기술력, 오랜 경험, 조직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부품 수를 51개로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다.

둘째, 조립공정을 간단히 했다. 이전의 보통 시계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케이스를 따로 만들고 부품을 조립한 뒤 나중에 둘을 끼워 맞췄다. 하지만 스와치는 케이스 안에 바로 부품을 조립해 넣고 유리도 붙박이로 끼워 맞추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래서 스와치는 플라스틱 케이스로 완전히 밀봉되어버리기 때문에 수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A/S 자체가 없다. 더구나 수공이 아니라 로봇에 의해 생산되기 때문에 조립공정이 단순해지고 그에 따라 생산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셋째, 매우 중요한 것으로 스와치는 시계 디자인에 라이프스타일을 충분히 반영했다. 과거의 시계는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정밀 기능과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스와치는 첨단 유행을 강조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신의 시계 컨셉을 알렸다. 강렬한 인상과 디자인, 느낌만이 아니라 ‘유행을 창조하는 젊은 행동파 스포츠맨’, ‘깔끔하고 세련된 스타일’처럼 확실한 제품 개념을 강조한 것이다.

스와치의 마케팅 전략

스와치는 1980년대 초반 미국 시장에 시계를 출시하면서 이런 광고 슬로건을 내걸었다. “두 번째 별장은 가지면서 왜 두 번째 시계는 갖지 않은가?”
스와치(Swatch)는 스위스 시계 (Swiss Watch)가 아니라 두 번째 시계(Second Watch)라고 자신을 알렸다. 그리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패션성 시계를 선보이기 위해 스와치는 디자인과 색깔이 6개월마다 바꾸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또 한번 출시된 제품은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절대로 다시 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때때로 판매 수량을 제한하여 한정판 모델을 출시하기도 했다.

인기 있는 모델은 나중에 경매 시장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정기적으로 스와치 초기 모델의 경매가 열리는데 일부 모델의 값은 6만 달러에 이른 적도 있다. 역사가 20년을 약간 넘은 회사의 제품치고는 대단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스와치 시계의 가격 전략은 소비자들이 부담 없도록 하는 데 있었다. 스와치는 세컨드 와치를 강조했기 때문에 가격을 높게 책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출시 당시부터 면밀한 계산 아래 시계 가격이 25달러에서 35달러의 범위를 넘지 않게 했다. 그전에는 스위스 시계가 일본보다 훨씬 비쌌지만 이제 일본 시계의 가격보다 오히려 저렴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통 측면에서 보면 스와치는 백화점이나 패션 아울렛처럼 외부 판매망도 이용했지만 직판망도 설치했다. 이것은 그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스와치는 상대적으로 적은 직판망 외에도 메가스토어(megastore)라는 커다란 체험공간을 만들었다. 이 메가스토어 매장에는 관람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독특한 피아노, 51개의 시계 부품, 거울천장, 모자이크 게단 등을 설치해 관람객이 메가스토어에 오랫동안 머물도록 했다. 일종의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인 셈이다.

스와치는 획기적이고 다양한 디자인이나 색상만큼이나 판매촉진을 위해 다양한 이벤트, 스폰서십을 벌였다. 스와치는 스노우보드, 산악자전거, 카약, 서핑, 비리발리볼, 웨이크보드, 스케이트보드의 최고 선수들을 지원하며 스와치 프로팀이라는 스포츠 프로팀을 구성했다. 이들 종목 중 일부는 올림픽 게임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는데 이로 인한 스와치의 홍보 효과는 매우 컸다.

우리는 왜 시계를 차는가

이제 시계는 시간을 보기 위한 상품이 아니다. 누구나 시간이 정확히 맞는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다. 시계가 이제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됨에 따라 시계 산업은 어느새 정밀산업이 아니라 패션산업이 되었다. 따라서 디자인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마케팅이 중요하다. 일찍이 1970년대 후반에 스와치 시계는 바로 이런 전략으로 스위스 위기를 극복해냈다.

물론 이제 스와치그룹에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값싼 스와치 브랜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메가, 론진, 라도, 브리겟, 티쏘, 캘빈클라인, 블랑팡 등 17개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브랜드들은 스와치의 저가 브랜드 전략과는 달리 티쏘와 캘빈클라인은 중가 브랜드로, 라도와 롤진은 고가 브랜드로, 그리고 오메가와 블랑팡은 프레스티지 브랜드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스와치그룹은 브랜드 포커싱 전략을 구사하여 이들 브랜드들이 같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일부러 알리지 않는다.

과거의 스위스 시계는 고가에만 포진해 있었지만 이제는 고가는 물론 저가 시장에도 진출하여 막강한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이것이 스위스 시계가 60%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그리고 스와치그룹이 이중 반 정도에 해당되는 점유율을 계속 차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김민주 (주)리드앤리더 대표

* 이글은 증권예탁결제원의 사보 KSDian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