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siness Knowledge is Power

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금융기관과 기업을 다니면서 경제경영의 여러 분야를 섭렵했다. 나는 대학에서 전공이었던 경제학 외에도 사회학, 심리학, 사학, 정치학 같은 인접 분야의 학문도 매우 좋아했다. 한 때 나의 꿈은 미래학자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단 하나의 학문에 매진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여 현실성과 이론을 겸비하고 있는 경제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이 때만 하더라도 경영학은 나중에 기업에서 근무할 때 배워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케팅을 비롯한 경영학은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 이 판단이 옳았다고 나는 아직도 판단하고 있다. 공부를 마치고 회사에 다니다 보니 경영학, 마케팅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탁월한 경제이론가이자 명쾌한 스토리텔러, 게리 베커와 로버트 루카스

내가 경제학과 경영학을 배우는 데 있어서 나의 스승으로 삼은 세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경제학 분야로는 내가 공부를 했던 미국 시카고 대학의 게리 베커(Gary S. Becker)와 로버트 루카스(Robert E. Lucas, Jr.)가 있다. 이 두 분은 현대경제학의 거두로 모두 1990년대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내가 시카고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 이 두 교수는 노벨상을 아직 받지는 못했으나 수상할 가능성이 너무 높아 과연 언제 받느냐가 주된 관심사였을 뿐이었다.

게리 베커는 미시경제학을 주로 가르쳤는데 그의 강의는 너무나 명쾌했다. 복잡한 경제 현상도 그가 분석 도구를 들이대면 복잡한 실타래가 그만 풀리고 만다. 그는 절대로 어려운 수학을 쓰지 않는다. 통찰력이 있는 그는 간단한 수식만으로도 문제를 쉽게 해결했기에, 많은 사람들의 탄복을 자아냈다. 그는 경제학 분석 도구를 활용하여 경제현상은 물론이고 법률, 마약, 이민, 마피아 등 각종 사회 문제에 분석의 잣대를 들이밀었다. 이러한 베커식 접근방식을 일부 사람들은 경제학 제국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탁월한 경제학자로는 이러한 일을 안 하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로버트 루카스는 거시경제학을 주로 가르쳤다. 그는 학부에서 사학을 전공했지만 게리 베커보다 어려운 고급 수학을 많이 구사하여 이론을 전개했다. 이론 도출 과정은 다소 어렵지만 그가 도출한 결론과 시사점은 매우 명쾌했다. 그는 합리적 기대가설, 투자이론, 신경제성장이론에 지대한 공헌을 세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루카스는 재털이를 아예 가방에 넣고 강의실에 가지고 와서 강연대에 올려 놓고 줄담배를 피울 정도로 애연가였다. 마치 자신의 두뇌에 있는 지식을 담배 연기를 통해 뿜어내는 듯 하면서… 한 마디로, 게리 베커와 로버트 루카스 교수는 탁월한 경제이론가이면서 시원시원하게 강의를 잘 하는 스토리텔러였다.

세계가 인정하는 마케팅 구루, 필립 코틀러

필립 코틀러(Philip Kolter)는 세계가 인정하는 마케팅 구루로, 마케팅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 중에 필립 코틀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그는 마케팅 이론을 개발하여 여러 비즈니스 현상에 적용하는 데 놀라운 재능을 가졌다. 원래 그는 경제학을 전공했으나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경제학의 한계를 느끼고 마케팅 분야에 경제학 이론을 적용하여 마케팅의 이론 체계를 선구적으로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에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전공을 바꾼 필립 코틀러가 변절했다고 비난을 했다고 한다. 필자도 경제학을 전공했다가 마케팅으로 방향을 선회한 입장에서 필립 코틀러가 왜 전공을 바꾸었는지 항상 궁금했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필립 코틀러에게 그 이유를 이메일로 물어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왜 전공을 바꾸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대한 필립 코틀러의 답변은 이러했다. “나는 전공을 마케팅으로 바꾼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경제학을 하고 있다. 내가 그 전에 배웠던 경제이론만으로는 현실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즈니스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경제이론에서 가격은 한계 비용에 약간의 적정 이윤을 붙이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가격은 전혀 그렇게 형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왜 그렇게 가격이 형성되는지 따지다 보니 마케팅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물론 경제학적 분석도구를 활용하여 마케팅을 분석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케팅이란 시장 경제학’이라고 정의한다. (Marketing is a marketplace economics.) 정말 탁월한 정의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경제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마케팅을 전공하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볼 때 두 전공간의 갭을 마법처럼 메꾸어준 것이다.

5년 전쯤에 내가 기업들의 지나치게 공격적인 마케팅은 부작용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때문에 절제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마케팅인 디마케팅(Demarketing)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었다. 이 때 관련 자료를 조사하다가 필립 코틀러가 디마케팅을 주제로 하여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이미 1971년에 기고했던 논문을 보게 되었다. 필립 코틀러의 선구안과 통찰력을 다시 한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립 코틀러는 이처럼 마케팅을 폭넓게 해석하여 비즈니스 현상을 명쾌하게 분석했다. 물론 그는 기업은 물론, 비영리기관, 정부, 개인 등 여러 주체에 마케팅 이론을 확대 적용하는 데에도 탁월한 식견을 지녔다. 그동안 발간했던 수십권의 책이 그의 다양한 관심과 정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나는 그동안 경제학과 마케팅을 배우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게리 베커, 로버트 루카스, 필립 코틀러 같은 거장들을 알고 배우게 된 것을 커다란 축복이라 생각한다. 그들로부터 배운 지식, 지혜, 통찰력을 동원하여 우리의 지구와 경제, 비즈니스의 현재와 미래를 개선하고 만들어 나가는데 나도 크게 기여하고자 한다.

* 참고 : 게리 베커와 로버트 루카스를 비롯하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개인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경제학의 제국을 건설한 사람들 : 노벨 경제학 강의] (윌리엄 브레이트, 배리 허쉬 공저, 미래의창, 2004년)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필립 코틀러를 비롯하여 마케팅 구루들의 개인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은 2007년에 번역 발간된 [마케팅, 거장에게 오늘을 묻다] (로라 마주르, 루엘라 마일즈 공저, 비즈니스맵, 2007년)을 참고하기 바란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겸 이마스(emars.co.kr) 대표 운영자

* 이 글은 LG CNS의 사보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2007년 11월호)에 기고한 글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