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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는 생산성 연쇄반응의 단초

우리는 살면서 수시로 메모를 한다. 누구와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혹은 책을 읽다가 기억해둘 것이 생기면 우리는 짤막하게 메모를 해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과신하고서 메모를 해두지 않았다가 나중에 큰 불편을 겪기도 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상대편과 대화하면서 상대편이 하는 말을 너무 많이 메모하다가 대화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나친 메모광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이다.

나는 얼마 전에 영화관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를 보면서 멋진 대사가 나오길래 나중에 사용하려고 열심히 외웠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자 상황은 기억나는데 대사는 감감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영화를 보러 갈 때에는 항상 볼펜과 수첩을 가지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평소에 내가 메모하는 것을 게을리하는 것은 아니다. 마침 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얻는 정보를 일시 저장하기 위해 우리는 메모를 한다. 메모를 하지 않으면 그 중요한 정보, 아이디어는 먼지처럼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잃어버린 정보를 복구하는데 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메모의 기회비용은 정말 크다. 더구나 메모에 적어둔 정보와 아이디어는 다른 정보와 결합하여 연쇄반응을 일으켜 생산성을 크게 높인다. 나의 경우 우연히 적어둔 메모 한 장이 신문 컬럼을 쓰게 했고 강의, 그리고 책을 연달아 만들어냈다. 메모는 내 생산성의 단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유명한 메모광들

어떤 사람들이 귀신처럼 메모를 잘할까. 우리가 잘 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대표적인 메모광이다. 다 빈치는 세상에 대한 다양한 호기심과 한군데 올인(All-in)하는 집중력, 현상 뒤에 숨어있는 원리를 발견하려는 탐구력이 뛰어났다. 그는 자신이 관찰했던 것, 생각했던 것, 연구했던 것을 틈나는대로 메모했다. 그는 글로만 메모하지 않고 화가답게 그림으로 또 설계도로 메모를 많이 했다. 그가 메모했던 것들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그의 진가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봤을 떄 천재들은 많이 있었다. 그 중에 다 빈치는 천재 중의 천재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의 메모 습관이 그런 평가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만화 [식객], [타짜]로 유명한 만화가 허영만도 메모광이다. 만화 소재를 찾기 위해 늘 조그만 그림 공책, 필기구를 작은 가방에 들고 다닌다. 물론 가방에는 사진기도 있다. 전국을 돌아 다니며 글이나 그림으로 메모하고 사진을 찍어두면 나중에 만화 구상을 하고 만화 지면을 채울 때 내용이 훨씬 풍부해진다. 그의 자택에는 여기저기 수많은 메모들이 덕지덕지 붙여져 있다. 대문, 주방, 작업실, 책상을 가리지 않는다. 그가 쓴 만화책 [꼴]을 보면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 그가 어떻게 메모하는지를 보여주는 사진이 들어가 있다.

내가 자주 만나는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는 지독한 메모광으로 유명하다.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의 수첩은 항상 바쁘다. 일개월 전 교보생명의 신창재 회장과 함께 몇 사람이 식사를 하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역시 한근태 소장의 손은 바빴다. 대화 중에 나온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적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메모한 내용은 그가 매주 보내는 한스레터의 흥미로운 글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강의하고 대화할 때 풍부한 사례로 등장하곤 한다.

2년 전에 나는 크루즈선을 타고 일본과 극동러시아로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희망제작소의 박원순 상임이사도 같이 탑승했다. 배를 타고 가다가 일본 홋카이도에 정박 했을 때였다. 그는 사진기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며 정말 많은 것을 찍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한국에 돌아가 다양한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 때 동행했던 조용헌 조선일보 컬럼니스트는 박원순님이 이제 그렇게 분주하게 사진을 찍을 나이가 지나지 않았냐는 촌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원순님은 괘념치 않았다.

몇 년 전에 중국 따렌에 간 적이 있다. 내가 숙박하기로 한 호텔 정문에서 택시에서 내렸다. 호텔 도어맨이 택시 문을 열어 주는데 그 옆의 다른 도어맨이 쪽지에 무엇을 적어 나에게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내가 탑승했던 택시의 번호판 번호를 적어 주었던 것이다. 혹시 택시에 가방이나 소지품을 놓고 내렸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을 때 택시 번호는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호텔의 사려깊은 고객 서비스에 정말 감동했다.

메모의 기술

어떻게 하면 메모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사람에 따라 정말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우선 수첩이 있다. 수첩도 작은 것이 있고 큰 것이 있는데 아무래도 작은 수첩이 휴대에 용이하고 효과적이다. 작은 수첩에 적은 내용들을 나중에 큰 수첩으로 옮겨 적는 경우도 있는데 귀찮아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수첩을 고를 떄 신경을 꽤 쓰는 편이다. 마음에 들면 수첩을 자주 들고 다니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수첩에 카테고리를 만들어 메모를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그냥 계속 연달아 쓴다. 카테고리를 염두에 두고 메모를 하면 어떤 카테고리에 쓸까 고민하다가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수첩 내용을 연달아 읽으면 서로 상이한 내용들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새로운 아이디어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는 수첩에 시간 순으로 계속 적는다.

물론 유명한 수첩들이 있다. 스케줄러 성격이 강한 프랭클린(Franklin) 다이어리도 있고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몰스킨(Moleskine) 다이어리도 있다. 몰스킨 다이어리는 그냥 백지 형태의 플레인(plain) 형태 외에 줄이 쳐있는(ruled) 형태도 있고, 격자 형태도 있다. 사용자에 따라 취사선택을 하면 된다. 이 외에 스케줄러 형태의 몰스킨 수첩도 있고 어떤 도시로 관광 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시티북도 있다. 해당 도시에 대한 정보도 수록되어 있고 메모를 하기에 좋게 만들어져 있다.

PC를 사용하다가 간단히 메모를 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우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메모장이 있다. 어떤 사람의 PC를 보면 메모들이 덕지적지 많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한글과컴퓨터에서 만든 한컴쪽지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휴대폰 사용이 많아지면서 어떤 사람들은 휴대폰에 짤막한 메모를 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휴대폰에 어떻게 메모하는지를 몰라 꼭 종이를 찾기도 한다. 휴대폰에는 아무래도 많이 쓸 수 없기 때문에 조그만 PDA나 넷북 등 모바일 기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메모하기가 훨씬 쉽다. 요금 구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구글닥(docs.google.com)에 메모를 하거나 문서를 작성하는 사람도 많다. 인터넷에만 접속할 수 있으면 어디에서나 자신이 써놓은 것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메모는 글이나 그림처럼 꼭 시각적인 형태로 남길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조그만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생각나는 것을 말로 남기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그대로 녹음하기도 한다. 문제는 상대편의 이야기를 그대로 녹음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편이 알면 매우 불쾌해 한다는 점이다. 또 녹음했다 하더라도 녹음 분량이 꽤 되면 나중에 다시 듣기가 부담스러워 그대로 사장되는 경우도 많다.

나는 1차적으로 메모한 것을 시간이 될 때마다 파워포인트 한 장으로 정리해둔다. 물론 이때에는 관련 자료를 더 찾아서 내 나름대로 이해한 바를 정리해둔다. 사진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페이지들이 계속 축적되면 만 페이지에도 이른다. 나는 나중에 어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이 파워포인트들을 쭉 훑어보곤 한다. 멋진 아이디어들이 샘물처럼 솟아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메모에는 왕도가 없다. 하지만 메모를 잘하는 사람을 당할 수는 없다. 메모광들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드넓은 지식, 지치지 않는 열정을 도저히 당할 수 없는 것이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겸 사례분석 사이트, 이마스(emars.co.kr) 대표운영자)

* 이 글은 삼성모바일 사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