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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에서 위(wii)까지 : 닌텐도의 진화 이야기

현생 인간을 부르는 표현이 많다. 우선 현명한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사피엔스를 비롯하여, 경제적 측면을 강조한 호모 에코노미쿠스, 유목성을 강조한 호모 노마드, 도구 사용을 강조한 호모 파베르라는 표현도 있다. 그리고 인간의 오락성을 강조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도 있다.

물론 놀기만 했다면 우리 인류는 지금처럼 잘 생존하고 풍요럽게 살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다 생산적이 될수록 우리의 뇌와 신체의 긴장을 풀어줄 필요는 더 늘어난다. 인간의 이런 본능적인 수요가 있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는 이제 거대한 산업이 되어버렸다. 지구상에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들라면, 아마도 월트디즈니, AOL타임워너, MTV, 세가(Sega), 엔씨소프트, 넥슨이 여러분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하면 게임기로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을 만든 소니와 엑스박스(XBox)를 만든 마이크로소프트도 떠오를 지 모른다. 하지만 임천당(任天堂)이라는 일본 기업을 금방 떠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에는 다소 생소한 기업인 임천당은 닌텐도(Nintendo)로 국내에 더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 대히트를 친 닌텐도DS, 닌텐도위(wii)가 바로 임천당 기업의 제품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2004년에 닌텐도DS를 출시하여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석권했고, 2006년에는 닌텐도위를 출시하여 또 한번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장악했다. 얼핏 보면 컨텐츠가 너무 간단해서 코웃음 치기 쉬운 그런 제품이 공전의 대히트를 친 것이다.

닌텐도DS의 개발 과정을 잠깐 보자. 과거와는 달리 게임기는 갈수록 기능과 사양이 높아지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이 그렇고 엑스박스가 그렇다. 따라서 게임기를 잘 다루는 젊은 층만 이런 어려운 게임기를 즐긴다. 하지만 닌텐도사는 그동안 게임기 시장에서 소외받고 있던 어린이와 나이든 성인들도 모두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동안 사람들이 게임을 하지 않는 이유를 찾아보았더니, 우선 게임 소프트웨어의 내용이 어려웠고 키보드를 조작하고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폭력적인 게임이 많고 어른에게 맞는 게임 소프트웨어가 별로 없었다. 또 게임기 크기가 커서 사용하기가 불편했고 게임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닌텐도 사는 기존 게임기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쉽고 재미있고 저렴한 제품을 고심 끝에 개발했는데 그 킬러 아이디어 상품이 바로 닌텐도DS다. 이 제품은 사용자 환경을 크게 바꾸었다. 2개의 화면에 터치 패널이고 마이크로 음성 입력도 가능하다. 폭력 게임이 아니라 두뇌 훈련과 영어 훈련도 할 수 있다. 시장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 2009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억 개나 팔렸고, 휴대용 게임기 시장 점유율은 무려 65%나 된다. 엄청난 성공이다.

닌텐도DS의 성공 후 닌텐도사는 또다른 히트 상품을 연달아 냈다. 바로 가정용 게임기인 닌텐도위(wii)다. 집에서 손에 게임기를 쥐고 TV를 보면서 야구, 테니스, 볼링, 요가 피트니스 등 많은 스포츠, 피트니스를 현실감 있게 즐길 수 있다. 왜 wii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영어 we를 의미하는데 가족 여러 사람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메시지다. 개발자의 이런 의도는 그대로 실적으로 나타났다. 2008년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닌텐도위의 시장점유율은 무려 63%나 된다. 플레이스테이션의 33%, 엑스박스 4%를 크게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기술이 부족하여 닌텐도DS와 닌텐도위를 못만드는 것은 아니다. 좀더 고객 관점에서 고객이 갈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여 이를 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상품을 개발할 때 타겟 고객을 잘 선정하여 이들에게 맞는 제품을 만들면 성공한다는 것이 금과옥조(金科玉條)이다. 닌텐도는 그 동안 무시당했던 가족 고객을 타겟으로 하여 신제품을 만들어 성공했다. 그리고 닌텐도사는 엔터테인먼트 즉 ‘오락’이라는 사업 이념을 창업 이후 지속적으로 지켜왔는데 이러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지금의 성공을 일구어낸 토양이 되었다.

닌텐도 기업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120년 전인 1889년에 세워진 기업이다. 현재까지도 탁월한 실적을 내고 있으니 대단한 장수기업이다. 이 회사의 사장인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바로 우리가 흠뻑 빠져 놀던 화투를 만든 장본인이다. 야마우치는 대통령(大統領)이란 브랜드로 화투를 팔았는데 당시 최고 인기상품이 되었다. 성인들은 담배를 사기 위해 담매 판매점을 많이 드나들었는데 바로 이 담배 판매점에서 성인들의 오락기구인 화투를 판매하는 유통 전략을 펼쳤다. 화투 자체가 진화한 것도 성공요인이었다. 화투의 앞면과 뒷면 사이에 석회가루를 넣었는데 화투를 칠 때 ‘짝! 짝!’하는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화투 치는 쏠쏠한 재미를 키웠다. 또 여러 번 치다 보면 석회가루가 터지게 되므로 화투를 다시 살 수밖에 없었다.

닌텐도 기업은 화투에 그치지 않고 서양화투인 트럼프 카드도 만들어 대단한 이익을 챙겼다. 처음에는 카드가 코팅되지 않은 종이로 만들어졌지만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카드를 대량 생산하자 매출이 크게 늘어났다. 또한 월트디즈니와 제휴하여 카드 뒷면에 디즈니의 유명 캐릭터를 인쇄한 오락용 카드를 만들어 매출을 더욱 늘리기도 했다. 회사의 이런 확장에 힘입어 1960년에는 닌텐도 주식이 오사카 증권거래소 2부에 상장되기에 이르렀다.

그 후 닌텐도사는 화투, 트럼프 카드 사업에서 벗어나 몇 차례의 사업 실패를 딛고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완구 사업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0년대 초반에 만능 팔인 울트라 핸드로 시작하여 야구공 피칭 머신인 울트라 머신, 렌즈가 잠망경처럼 달린 울트라 스코프 등 울트라 시리즈가 히트를 쳤다.

연이어 닌텐도사는 태양전지와 감광반도체 기업이던 샤프(Sharp)사 출신인 우에무라를 영립하여 레이저 광선총을 개발한다. 더구나 당시에 문을 많이 닫고 있던 볼링장을 광선총 실내 사격장으로 개조하여 대히트를 친다.

1980년 닌텐도사는 휴대용 전자계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세계 최초로 소형 휴대용 컴퓨터 게임기인 게임&워치를 개발했다. 또 1983년에는 가족용 게임인 패미콤을 개발하여 두 달 만에 50만 대 넘게 판매 했다. 특히 킬러 콘텐츠인 슈퍼마리오 게임으로 대박이 났다. 그후 16비트 게임기인 슈퍼 패미콤이 1990년에 출시되었고 64비트 게임기인 닌텐도64, 128비트 게임기인 게임큐브가 연달아 개발되어 성장세를 지속한다. 하지만 2000년 들어와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의 급성장에 밀려 업계 3위로 추락한다. 닌텐도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닌텐도DS, 닌텐도위에 힘입어 다시 왕좌를 차지한다.

이번에 나온 책 ‘닌텐도 이야기’는 닌텐도사의 흥미진진한 신제품 개발 스토리를 진화(evolution) 관점에서 경영서 전문 작가가 풀어 낸 책이다. 올해 2009년은 걸출한 진화론자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이자 그의 걸작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진화는 흐름에 무조건 맞서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잘 타는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기업이 지나친 공금 마인드로 소비자를 바꾸기 보다는, 많은 소비자를 포섭하기 위해서는 쉽고 재미있고 저렴한 상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닌텐도사는 이러한 사실을 지난 120년 역사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실천에 옮겨 성장세를 지속해 왔다. 인텐도의 고객은 다섯 살부터 아흔다섯 살까지의 모든 사람이다. 최근의 대히트상품 닌텐도DS와 닌텐도위는 이러한 진실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다.

닌텐도사의 한자어인 임천당(任天堂)은 ‘하늘에게 맡겨라’라는 뜻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긴다’는 마음으로 창업자는 1889년 화투를 생산했다. 그후, 울트라핸드, 게임&워치, 패미콤, 닌텐도DS, 닌텐도위 등, CEO와 개발자는 소비자의 마음을 정확히 읽은 신제품을 속속 개발해냈다. 결과? 닌텐도사는 2008년에 매출액 1조 8천억 엔을 기록했다. 이 놀라운 교토 기업에 찬사를 보낸다.

글 :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겸 이마스(emars.co.kr) 대표운영자

* 이 글은 교보문고 서평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