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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디지털 시대의 신인류, 호모 나랜스
부제: 스토리텔러를 꿈꾸는 이들이 알아야 할 인류의 원초적 본능 이야기법칙

저자 : 한혜원
출판사 : 살림출판사
출간일 : 2010년 03월

우리가 현생인류를 부를 때 보통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부른다.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생물학적 종은 호모 사피엔스이지만 사람의 특정 기능에 따라 사람을 부르는 표현은 매우 다양하다. 놀기 좋아하면 호모 루덴스, 전화로 말하기 좋아하면 호모 텔레포니쿠스, 영성이 강하면 호모 스피리투스,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면 호모 노마드, 도구 다루는 것을 좋아하면 호모 파베르라고 부른다. 물론 이 외에도 성향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는 말이 나왔다. 이야기를 즐기는 인간을 말한다. 이 표현은 단순히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 본능이 자신의 DNA에 들어가 있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할까? 단순한 정보만으로는 우리 뇌에 각인되기가 힘드는 데 반해, 재미있는 스토리는 각인하기가 좋아 기억해내기가 쉽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의 위력은 사실 어제 오늘 입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와 더욱 부각하는 이유는 정보가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스토리의 파워가 상대적으로 커졌고, 상업적으로 콘텐츠의 매력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을 통해 주관적인 경험을 전달하고 공감을 유도하는 기법이 각광받고 있다. 이런 기법에 대한 표현은 스토리텔링 마케팅, 스토리텔링 경영, 스토리노믹스 등 다양하지만 사실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책은 최근 10년 사이에 많이 나왔다. 어떤 책들은 어떻게 하면 소설, 영화처럼 멋진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까 같은 이슈에 대해 고민했다. 또 다른 책들은 기업이나 조직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스토리텔링을 이용하여 회사와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조직의 비전을 스토리로 만들어 조직의 방향성과 결집력을 강화할 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데 한혜원씨가 쓴 책 [디지털 시대의 신인류, 호모 나랜스]는 후자보다는 전자를 더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인 르느와르는 ‘아름답게 그려야 한다’고 항상 말했다. 르노와르의 그림을 보면 항상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어떤 콘텐츠여야 인기를 끌 수 있을까? 우선, 재미있고 독창적이어야 한다.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재미가 있더라도 가른 것과 차별화되지 않으면 이내 지루해 한다.

스토리텔링 하면 사람들은 문자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 사진 한 컷으로도 얼마든지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스토리텔링을 이용한 마케팅을 전개할 수 있다. 사진작가인 멜라니 풀렌(Melanie Pullen)은 2002년부터 엽기적인 사진들을 내놓았다. 명품 구두와 패션을 입은 젊은 여성이 살해당해 죽은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물론 연출된 사진이었다. 그녀는 특히 하이힐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이힐도 이름 없는 구두가 아니라 프라다, 샤넬, 구찌 같은 명품 구두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사진을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뭔가 사람들을 자극하여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사진 작가는 바로 그 점을 노렸는데 그것이 적중했다. 명품 회사들은 처음에 멜라니 풀렌의 사진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사람들의 관심이 늘자 경쟁적으로 그녀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사진에 자신 회사의 브랜드가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기업은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잘 할 수 있을까? 덴마크의 스토리텔링 전문기업인 시그마의 클라우스 포그(Klaus Fog) 대표는 브랜드 스토리를 핵심 스토리, 외부 스토리, 내부 스토리 등 세 가지로 구분했다. 고객 및 협력업체의 스토리, 광고는 외부 스토리에 해당되고, 직원 및 경영진의 스토리, 상품 자체의 스토리는 내부 스토리에 해당된다. 핵심 스토리는 브랜드 가치에는 동기를 부여하고 소비자에게는 공감을 부여한다.

어떻게 해야 사회에 걸출한 스토리텔러들이 배출될 수 있을까?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스토리텔러들이 있어야 그 중에 뛰어난 스토리텔러가 나오게 마련이다. 따라서 왜 우리에게는 해리 포터를 쓴 조앤 롤링이 없냐고 한탄하지 말고 왜 우리에게는 사회 전반에 펼쳐진 스토리텔링 클럽이 없냐고 한탄해야 한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영국 도서관에는 유명한 스토리텔러가 매일 오후에 나타나 두 시간씩 스토리텔링 워크숍을 개최한다. 물론 무료다. 어떤 스토리텔링 클럽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예술가들이 신화에서부터 사소한 자신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 원천을 발굴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한다. 또 어떤 스토리텔링 학회는 구술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전문 스토리텔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배출된 스토리텔러들은 학교, 도서관, 공원, 교도소, 병원 등 여러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며 주민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일본도 이야기 왕국이다. 특히 사소설이 강점이다. 사소설이란 작가가 자신의 사생활과 심경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소설을 말한다. 일상의 한 단면을 크게 극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파게티를 삶으면서 인생무상을 떠올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바로 그렇다. 일본의 스토리텔링 파워는 사소설에 그치지 않고 신의 물방울, 미스터 초밥왕, 후쿠야당 딸들, 서양골동과자점처럼 음식을 테마로 하여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스토리텔링 파워도 만만치 않다. 사소설 분야에서는 약하지만 온라인 게임이 강세이고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순수문학보다는 장르문학이 강해지고 있다. 장르문학에는 공상과학, 추리, 판타지가 해당된다. 우리나라의 전통을 보면 인쇄문학보다는 구비문학이 강한 편이다. 디지털 기술은 과정추론적, 참여적, 비선형적, 백과사전적이라는 점에서 구비문학의 전통이 우리에게 더 맞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우리나라 콘텐츠 업계들이 더욱 주력해야 할 분야라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이야기의 소재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좋고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팩션(faction)을 만드는 것이 좋다. 그래야 재미있고 독창적인 스토리를 얻을 수 있다.

글 :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 겸 이마스(emars.co.kr) 대표운영자)

* 이 글은 교보문고의 북모닝CEO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