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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여기, 길이 있었네

부제 : 대한민국 명사 122人에게 듣는 농업·농촌의 미래상

저자 : 강현욱 등 저

출판사 : 모던플러스

출간일 : 2010년 09월

우리나라에 농촌진흥청이라는 조직이 있다. 우리나라 농촌기술의 R&D센터 기능을 톡톡히 발휘한 조직이다. 1962년에 설립된 이후 다수확 쌀 품종을 개발하여 녹색혁명을 일으켰고, 최근에는 누에고치를 가지고 인공고막까지 만드는 성과를 거두었다.

몇 년 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조직 개편 움직임에 따라 농촌진흥청은 하마터면 없어질 뻔 했다. 그래서 위기감에 휩싸인 농촌진흥청은 자체적인 조직개편, 비용 감소, 성과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9년 최우수 정부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위기를 기회로 잘 살린 것이다. 정운천 전 농수산식품부 장관 표현에 의하면, 농촌진흥청을 살생부에 올려놓은 후 이렇게 농촌진흥청이 국내 최고 정부기관이 되었으니 한 번 더 살생부에 올려 놓으면 농촌진흥청은 세계 최고 정부기관이 되겠다 우스개 소리를 했다. 농담 속에 뼈가 있는 말이었다.

물론 농촌진흥청이 이렇게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데에는 새로 부임했던 김재수 농촌진흥청장의 역할이 매우 컸다. 농촌진흥청은 자제 개편 노력과 함께 외부사람들과의 교류를 크게 늘렸다. 미래전략 그룹을 만들어 외부 전문가들을 포섭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최근에는 121명의 명사들에게 농업과 관련된 글을 써달라고 의뢰하여 책을 내기도 했다. [여기, 길이 있었네; 명사와 나누는 농업이야기’가 바로 그 책이다. 흥미진진한 체험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이 책을 통해 121명의 다른 사람들의 농업 이야기를 들어 보고, 각자도 이 책에 글을 기고한다고 생각하고 농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왜냐하면 농업은 정말 중요한 산업이고 농촌은 우리 모두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여러 글 중에서 여기에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가 쓴 글을 소개한다.

‘거주민과 외지인에게 모두 인기 있는 농촌 만들기'

나는 태어나서 이제까지 줄곧 도시에서만 살아왔다. 그래서 농촌, 어촌, 산촌에 가서 시간을 보내더라도 그 지역을 아주 깊숙이 알지는 못한다. 관광객 입장에서 보는 눈과 거주민 입장에서 보는 눈이 크게 다르게 마련이다. 이런 기본적인 전제 아래 농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겠다.

우선, 필자가 3년 전에 캐나다 서부의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밴쿠버섬에 위치한 부차트 가든(Butchart Garden)에 간 적이 있다. 100여 년 전, 원래 석회석을 파다가 방치된 흉칙한 노천 채굴장에다가 100여 년 전에 여러 지역에서 가져온 나무와 꽃을 심어 정성스레 가꾼 정원이 이제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었다. 자식에게로 정원이 넘어가면서 운영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다시 정원을 재정비해 성큰 가든, 로즈 가든, 재패니즈 가든, 이탤리언 가든, 로즈 분수를 자랑하고 있고, 아름다운 경관 덕분에 레스토랑과 결혼식장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멀리 가지 않고 우리나라에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리포수목원이 태안반도에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경주에는 어떤 허브 농장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허브 재배도 하고 허브를 가지고 가공품을 만들기도 하고 레스토랑 겸 숙박시설도 제공하고 있다. 이른바 허브 하나를 가지고 1차, 2차, 3차 산업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허브 사업이 부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설득으로 자식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원예학과로 전과를 해서 가족사업으로 일구어 나가고 있다.

요즘 바이오(bio) 산업이 뜨고 있는데, 의료, 제약 분야의 레드 바이오, 화학 분야의 화이트 바이오, 농업 분야의 그린 바이오, 심층해양의 블루 바이오로 크게 나뉜다. 이처럼 그린 바이오 산업의 선봉장에 있는 농업은 1,2,3차 산업을 넘어 연구개발을 통해 4차 산업인 지식사업에도 진입했다. 농업에 기반을 둔 덴마크가 바이오 산업에 진출해 매우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덴마크는 현재 전 세계 행복국가 1위를 달리고 있지 않은가?

물론 농촌이 잘 살려면 1차 산업에 문화관광을 더해 1.5차 산업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 지역의 독특한 농산품, 음식, 문화유적, 자연환경, 숙박시설, 축제, 체험 프로그램을 잘 개발하면 국내 타지역은 물론 외국으로부터 관광객이 많이 온다. 더구나 요즘 관광의 유형이 피상적인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을 직접 보고자 하는 국내외 자유여행객들이 크게 늘고 있어 이런 노력은 더욱 시기에 적절하다. 축제도 지나치게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그 지역의 컨셉에 맞는 축제와 상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그 생명력이 오래 간다.

관광객이 일시적으로 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최근 들어 대도시에 사는 사람 중에는 아예 근거지를 농촌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아예 집단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 양평군의 서종면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 지역 사람들은 자체 지역음악회를 9년째 꾸준히 열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2년씩 지방에 옮겨다니는 약간은 방랑 겸 정착형의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분들에게는 주민들이 마음을 열어주는 개방적 문화가 필요하다.

농촌에 사시는 분들은 1차 산업에서 1.5차 산업으로 또 2,3,4차 산업으로 계속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농촌에 어울리는 콘셉트를 꾸준하게 밀고 나가 외지인들이 그 농촌에 가보고 싶고 또 살고 싶은 지역이 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 농촌이 가야할 방향이 아닐까.

글 :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겸 이마스(emars.co.kr) 대표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