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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마케팅? 독자에 따라서는 이미 몇 번 들어본, 어느 정도 익숙한 용어일수도 있고 처음 접해보는 생소한 개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쉽게 말해 기업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들의 상품을 사지 말라고 하는 것이 모두 디마케팅이다. 될 수 있으면 많이 사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 기업인데 오히려 사지 말라고 하다니 좀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마케팅을 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의도하는 바가 있다.

필자가 그동안 경험했던 사례들로 우선 시작해보자. 이 경험담을 듣다 보면 여러분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음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뼈아픈 디마케팅 경험 4가지

(첫 번째) 15여년 전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어느 스위스 은행으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자신들은 고객의 비밀을 철저히 보장하는 은행인데, 이번에 내가 예금계좌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번 제안을 거절하면 죽을 때까지 다시는 이러한 좋은 기회는 없다는 약간은 협박성의 편지였다. ‘Now or Never’, 즉 우리 식으로는 ‘지금 아니면 기회는 영원히 없다’는 표현에 딱 맞는 사례이다. 당시 나는 주식을 사기 위해 어느 증권회사에 계좌를 열었는데 이 정보를 은행이 입수한 모양이었다. 당시 나는 가진 돈이 별로 없어서 이 은행에 계좌를 열지 않았는데, 정말 약속대로 그 은행은 현재까지 나에게 일절 접촉해오지 안았다. 협박성이긴 했지만 정말 Now or Never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증권회사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게 된 것이다. 자사의 증권계좌에서 주식을 빼달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이유인즉슨, 내가 주식을 사고 나서 일절 거래를 안 하기 때문에 괜시리 고객관리비용만 나간다는 것이었다. 편지를 받았던 당시에는 정말 황당했다. 고객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한국의 증권회사나 은행만 봐 왔던 나로서는 충격 자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국에는 두 종류의 증권회사가 있다. 하나는 고객에게서 월별로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증권투자 정보나 투자 컨설팅을 제공하는 풀 브로커리지(Full Brokerage) 증권회사이고 다른 한 종류는 오로지 증권 매매에 따른 수수료만을 받는 디스카운트(Discount) 증권회사이다. 내가 거래한 증권사는 후자에 속하는 기업으로, 나처럼 일단 주식을 사고서 매매하지 않고 보유만 하는 고객이라면 회사 입장에서는 매월 우편 비용을 비롯한 기타 관리 비용만 발생시키는 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이 회사로부터 주식을 빼내어 이런 규정이 없는 다른 금융기관을 찾아 증권을 예탁해야만 했다.

(두 번째) 우리나라에도 술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주류 전문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가게들을 리커 스토어(Liquor Store)라 부르는데, 내가 처음으로 이곳에서 술을 사려고 했더니 운전면허증을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만 하더라도 아직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상태라 결국 술을 못 사고 허탕을 친 적이 있다. 나이를 확인하지 않고 술을 팔다가 적발되면 몇 달간 영업정지를 당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검사하는 것이었다. 이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다가 적발되어 영업정지를 당한 리커 스토어를 실제로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규제에 따른 강제적인 디마케팅 사례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서울에 있는 홍익대학교 부근에는 멋있는 카페들이 많다. 어느날 회사로 찾아온 손님과 함께 한 카페를 찾게 되었는데 자리가 없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카페 직원에게 그만 보기 좋게 거절 당하고 말았다. “우리도 이제 그런 나이가 온 것 같다”고 서로 농담조로 푸념하면서 근처 다른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거기서도 종업원이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종업원에게 왜 좌석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발렌타인데이여서 손님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오기가 발동해 그렇다면 한번 들어가서 확인을 해보아도 좋겠냐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자리가 없었다.

며칠 후 다시 그 카페에 가보았는데 이때는 좌석이 비어있어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가 카페의 소위 ‘물’을 흐리기 때문에 디마케팅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작은 위안으로 삼았다. 나이트클럽에는 요즘 가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주위 젊은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적절하지 않은 옷을 입고서는 입장이 안된다고 한다. 이것 또한 물 관리 차원의 디마케팅이다.

(네 번째) 회식 장소를 찾던 차에 회사 직원이 신촌에 있는 재미있는 식당을 알고 있으니 거기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 식당은 남자들끼리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그 이유인즉 주메뉴인 낙지찜은 너무 맛있는 음식인데 남자끼리 오면 술만 잔뜩 마시고 낙지찜은 안주로만 취급해버리니 낙지찜 요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주인으로서는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식탁에 여자가 끼면 남자들이 술을 덜 마시는 경향이 있기도 하거니와 또 남자 손님들만은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소문이 나면 그 특이함 때문에 좋은 홍보가 될 것이라는 마케팅 차원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런 입소문을 들으면 과연 그런지, 음식맛도 정말 그만큼 좋은지 확인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기 마련이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디마케팅은 기업들의 ‘선택과 집중’ 전략의 일환

세계 굴지의 대기업들, 그리고 하물며 길거리의 조그만 가게까지도 왜 이런 디마케팅을 하는 것일까?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상품을 팔면 훨씬 좋은 일일텐데도 말이다.

전쟁 시에 적과 대치하는 전선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병력이나 물자의 배치나 효율성에 큰 문제가 생긴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전투를 해야 하므로 군인 수가 부족할 수밖에 없고, 무기나 식량과 같은 군수물자의 이동에도 문제가 생긴다.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광대한 영토를 가진 제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유지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 선택과 집중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우도 이와 같다.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고객의 숫자가 아무래도 적기 때문에 상품의 품질에도 신경 쓰고 고객 서비스도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객이 점차 많아지면 늘어난 수요에 맞추느라 품질 관리도 점점 어려워지고 일부 고객의 경우에는 미처 관리할 여력이 되지 못해 고객 서비스가 나빠지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그 일부 고객의 불평과 불만을 해결하려 신경 쓰다 보면 이제는 우수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소홀히 하게 된다. 회사가 가동할 수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너무 많아진 고객을 다 쫓다가 결국 모든 고객들에게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결과적으로 회사의 평판은 나빠진다.

그러므로 기업의 영업 전선을 우수고객에게만 집중하고 돈이 안 되는 고객은 마음이 아프더라도 서비스를 중단하는 것이 기업의 수익성 측면에는 훨씬 유리하다. 즉, 우수고객에게는 VIP 마케팅을, 불량고객에게는 디마케팅을 하자는 이야기다.

물론 기업들이 단기적인 수익성만을 위해 디마케팅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기업이 갖는 비중이 점차로 확대됨에 따라 소비자들은 이제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을 함께 나누어 질 것을 기대한다. 초기에는 기업들도 정부의 규제나 NGO 단체들의 압력에 쫓겨 할 수 없이 디마케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소비자들의 이런 요구를 계속 외면한다면 장기적으로 사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디마케팅을 실시하는 추세이다. 기업도 사회구성원(Corporate Citizenship)이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확실히 인식시키는 것이 이제는 기업의 강력한 차별화 마케팅 전략이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우선 파트1에서 디마케팅이 일반적인 마케팅과는 어떻게 다른 개념인지를 알아본다. 사회경제적 관점, 소비자행동 측면에서 최근에 와서 왜 디마케팅이 주목 받고 있는지도 살펴본다. 또한 변화된 비즈니스 환경에서 왜 디마케팅 전략이 꼭 필요해졌는지를 알아보자.

파트 2에서는 대표적인 사례와 함께 디마케팅을 각 유형별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이 장에서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크게 부각되고 있는 수익성 제고형 디마케팅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경기가 예전처럼 급격하게 성장세를 타기가 어려워진 요즘에 은행과 신용카드사 같은 금융기관들, 그리고 인터넷 업체와 홈쇼핑업체 같은 무점포 유통업체들이 어떤 식으로 이런 유형의 디마케팅을 펼치고 있는지 파트 2에서 집중 분석한다.

그리고 기업들은 단기적인 수익 목적 이외에도 장기적으로 공익적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디마케팅을 실시하기도 한다.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이 갈수록 강조될 것으로 보이면서 이런 목적의 디마케팅은 앞으로 더욱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담배회사, 주류회사, 패스트푸드 회사들의 사례를 통해 파트3에서 알아보겠다.

파트4에서는 그 외 다른 4가지 유형의 디마케팅을 설명하겠다. 정부의 강제적 규제 때문에 기업이 할 수 없이 디마케팅을 하는 경우, 일시적으로 공급과 수요에 불균형이 발생할 때 수요를 줄이는 경우, 1%의 최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귀족마케팅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디마케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견상으로만 디마케팅을 할 뿐 실제적으로는 더욱 매출을 확대하려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는 외견상 디마케팅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파트5에서는 디마케팅에 대해 일반적으로 오해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지적하고, 또 실제로 디마케팅을 시행할 경우 유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 알아본다. 다른 어떤 전략보다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 바로 디마케팅이다. 자칫 고객들의 불편과 불만을 야기하여 기업 이미지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외 다양한 디마케팅 제안과 앞으로의 전망도 조심스레 덧붙일 것이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필자는 그 동안 여러 기업체에 근무하면서 여러 다양한 분야에 걸쳐 쌓은 마케팅 경험을 바탕으로 그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 동안 마케팅의 분야에도 여러 큰 흐름들이 있었다. 그러나 비교적 오랜 기간동안 필자가 관찰해온 바에 따르면 앞으로는 공익적 마케팅이 대세로 자리 잡아갈 것이다. 특히 환경재단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공익 마케팅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더욱 디마케팅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실제로 IMF 이후 전체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금융기관과 인터넷업체, 그리고 일부 유통업체들이 자구책 차원에서 디마케팅을 시행했다. 또 이미 명품업체들에게는 무차별적 마케팅보다는 절제와 통제의 마케팅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미 우리 기업들에도 디마케팅 개념이 어느정도 알려져 있고 앞으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활성화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면서 이에 대한 정확한 정리나 추가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디마케팅!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디마케팅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처럼 할 수 있는 건 일단 모두 해보자는 식이 아니라 이제는 신중하게 선택하고 또 집중해야 한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잘하고 못하는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하는 것이다. 버리는 것도 기술이다. 결정한다는 뜻의 영어단어 decide는 10가지 옵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니까 9개는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절제를 배우는 것, 또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전체를 배려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좀더 공익적인 사고방식, 이런 것들을 이제 우리도 배우고 실행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나라는 디마케팅이 이제 확산되는 초입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들이 이 책을 통해 디마케팅의 개념과 다양한 실제 사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또 디마케팅의 다양한 측면들을 이해하는 것이 자신이 속해있는 기업에 맞는 효율적인 디마케팅 방안을 찾아내는데 보탬이 된다면 더욱 좋겠다.

김민주 (mjkim@emars.co.kr, mjkim8966@daum.net)

* 이 글은 책 [디마케팅] (김민주 저, 미래의창 발행, 2003년 11월)의 서문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