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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가 접하는 경계에 헤이온와이라는 조그만 마을이 하나 있다. 이곳에는 매년 5월이 되면 10만 여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어떤 멋진 이벤트가 있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 축제가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마을 이름 헤이온와이(Hay On Wye)는 말 그대로 ‘와이(Wye) 강변에 있는 헤이(Hay) 마을’ 이라는 뜻이다. 이 마을이 지금은 북적거리지만 1960년대만 해도 다른 시골 마을들처럼 쇠락해가는 탄광촌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작은 시골마을이 유명한 책마을이 되었을까? 여기에는 헌 책에 대한 열정과 불굴의 투지로 똘똘 뭉친 이 지역 출신 청년의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

리처드 부스는 대학 졸업 직후인 1962년에 회계사 직업을 마다하고 고향 마을에 돌아와 헌 책방을 차렸다. 상식적으로 보면 퇴역 군인들과 노인이 대부분인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아무도 책을 사 읽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리처드 부스는 오직 ‘헌 책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영국과 유럽, 미국 등지를 다니며 부지런히 책을 사 모았다.

사업 초기에는 어느 정도 수월하게 돈을 벌 수 있었다. 유럽의 유서 깊은 집안에 썩혀있는 헌 책들을 찾아 구입해서 미국과 호주 등지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대학들에게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학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자국의 짧은 역사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유럽의 고서적에 대한 수요가 대단히 많았다. 리처드 부스의 헌 책 사업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그와 거래하던 상인들도 하나 둘씩 헤이온와이로 들어와 헌 책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헤이온와이의 이름이 전세계로 퍼지는 계기를 맞게 된다. 1977년 만우절에 행한 ‘왕위 즉위식’ 및 ‘헤이온와이 독립 선포’ 때문이다. 그는 헤이온와이의 황폐해진 고성을 구입한 후 이를 수리하여 고서점을 입주시키고,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이 나라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화폐와 여권까지 만들었다. 이러한 독립 선언은 단순한 장난으로 그치지 않았다. 각종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헤이온와이라는 이름이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사자왕 리처드’ 이름을 따라 만든 ‘서적왕 리처드’ 라는 헌 책 장사꾼의 이름도 더불어 유명해졌다.

헤이온와이를 유명하게 만든 이벤트가 또하나 있었다. 바로 성벽을 따라 만들어진 40km 나 되는 야외 책장이었다. 점점 늘어나는 헌 책들을 정리하기 위해 서점은 헤이 성 성벽을 따라 책장을 만들고 성 정원에 금고를 배치했다. 고객은 원하는 책을 가져가고, 금고에 책값을 지불하는 형태였다. 그래서 서점 이름도 어니스티(honesty) 서점이다. 이 야외서점은 재고 처리 효과는 물론 대대적인 홍보 효과도 거둔 기발한 발상이었다.

이런 괴팍한 리처드 부스의 계속되는 기상천외 아이디어와 부단한 노력으로 헤이온와이는 70년대 말 세계 최초의 ‘책 마을’이 되었다. 새로운 입주자들은 오래된 집, 창고들을 고서점으로 바꿔놓았고, 그 결과 주민이 1,500명에 불과한 시골 마을에 서점이 무려 40여개나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헤이온와이를 본따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책마을을 하나씩 세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책 마을 열풍은 어느새 우리나라에도 퍼졌다. 유럽의 한 책 마을을 방문했던 박대헌 씨가 영월에 폐교한 한 학교를 책 박물관으로 바꾸어, 영월을 책 마을로 탈바꿈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매년 5월 문학 축제도 벌이고 있지만 헌 책방과 다른 시설들이 입주하지 않아 아직 활성화가 안되고 있다.

이제 헤이온와이는 단순한 책마을에서 더 나아가 웨일스의 유명한 명소로 자리매김을 했다. 현재 헤이온와이는 40여개의 서점, 백여개의 숙소가 있는 유명한 관광촌으로 거듭나고 있다. 서점은 관광객을 불러들였고, 이로 인해 다른 사업들이 덩달아 생겨난 것이다.

우리나라 지방은 지역활성화를 대단히 원하고 있다.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테마로 차별화를 꾀하고 이를 지역 축제로 연결한다면 매우 좋을 것이다. 지방 사람들이 지역활성화를 위해 무엇을 건의할 때 지방 관료들이 관료주의로 방해를 하면 큰일이 난다. 헤이온와이의 리처드 부스는 사업에 비협조적인 웨일스 관광청장도 갈아치웠으니까.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www.emar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