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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문화, 환경, 여성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만큼 부드러운 것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동안에는 하드(hard)한 남성적인 것이 세상을 지배했다면 이제는 부드러운(soft)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요즘 이중에 문화가 우리에게 특히 많이 다가서고 있다. 블록버스터급의 우리나라 영화들이 계속 히트를 쳐서일까. 아니면 오페라의 유령, 투란도트 같은 대형 오페라가 흥행에 성공해서일까. 그래서인지 요즘 기업들은 마케팅을 하는 데 있어서 문화적인 측면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데 있어서 음악이나 미술 같은 문화 장르가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산토리의 문화 마케팅

일본 기업들이 마케팅에 투여하는 비용중 문화 마케팅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높다. 우리나라는 스포츠에 투자하는 마케팅 비용이 높은 편이다. 스포츠는 남성적인 요소가 많다면, 문화는 여성적인 요소가 많다.

일본의 산토리 경우를 한번 보자. 일본은 위스키 기업의 대표 주자이다. 1930년대부터 위스키 보급에 많은 기여를 한 결과 커다란 주류 회사가 되었지만 이로 인해 일본을 술에 찌들게 했다는 비난을 받게되었다. 그래서 산토리는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기업 이미지를 올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술을 덜 마시자는 절주 캠페인도 벌이고, 문화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했다. 그래서 산토리는 이제 일본인들 사이에 존경받는 기업이 될 정도로 수익성도 좋고 이미지도 좋은 기업이 되었다. 술 회사가 존경받는 기업이 되었다면 이들 기업이 PR과 마케팅에 얼마나 혼신의 노력을 쏟았는지 잘 알 수 있다.

산토리는 케이조 싸지 사장의 방침 아래, 광범위한 문화 마케팅을 행하고 있다. 1961년 도쿄의 미술 박물관에서 시작하여, 1969년에는 음악 재단을, 그리고 1986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토리 홀을 도쿄 시내에 건립했다. 특히 산토리 홀은 위스키 생산 60주년을 기념하여 지어진 음악 콘서트 홀로, 도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한번쯤은 꼭 찾는 관광 명소가 될 정도이다.

도쿄의 산토리 미술 박물관은 일본 전통 미술을 후원하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매년 산토리 미술 박물관 상을 국내외 모던 미술 작품을 대상으로 수여하고 있다. 1969년에 설립된 산토리 음악 재단은, 매년 국제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를 산토리 홀로 초대하고 있다. 또한 매년 산토리 음악 상을 수여하면서 산토리의 문화적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 뿐만이 아니다. 문화와 함께 하는 위스키라는 점을 산토리가 강조하면서 산토리 이미지의 고급화 그리고 차별화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산토리 위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산토리의 고급스러운 문화 마케팅은 현재 산토리가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들과 함께 산토리 이미지 고급화에 앞장서고 있다.

미술품이 기업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문화예술의 대표주자인 음악과 미술을 한번 비교해보자. 우리나라 경우 기업들은 음악에는 관심을 많이 표명하는 데, 미술에 대한 관심은 많이 떨어진다. 다시 말하면 기업들은 음악회에 대해서는 스폰서를 많이 하는 데 미술전람회에 대해서는 지원이 적다는 이야기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음악회는 풀 서비스 레스토랑, 미술전람회는 부페 식당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음악회에 가면 고객은 가만히 있어도 무대에서 모든 것을 다 들려주고 보여준다. 고객은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반면 미술전람회에서는 고객들이 홀을 빙빙 돌며 어려운 그림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발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그러니 고객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고, 기업들도 미술전람회 티켓을 고객에게 주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위에서 사례로 든 산토리 경우는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 마케팅에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미술은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 직원에게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요즘 상상력을 강조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노동력과 물적 자원의 투자만으로는 부가가치가 별로 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규 사업이나 마케팅,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어 부가가치를 올리기 위해 상상력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기업에 새로운 인력이 들어와서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지만 기존 인력도 회사 분위기가 바뀌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멋진 아이디어가 속출할 수가 있다.

프로그레시브 보험사의 놀라운 미술품 효과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미국 자동차 보험업계에서 3위를 점하고 있는 프로그레시브라(Progressive Corp.)는 보험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개인의 위험도가 높아서 다른 보험업체로부터 가입을 거절당한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보험을 판매하기 시작해 인기 몰이를 했다. 또 위험도가 매우 높은 오토바이 보험에도 진출해서 성공을 했다.

무료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업계 최초로 웹사이트를 구축하기도 했다. 또한, 타업체와 가격을 비교하는 견적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고객에게 보험 언더라이팅(Underwriting)에 대한 정보를 매월 공개하기 시작했고, PDA를 통해 고객이 무선으로 보험료를 납부토록 했다. 또한, 특이하게도 미술품 컬렉션을 통해 직원들의 창의력과 독창성을 키우려는 노력도 경주하고 있다.

이 회사의 CEO였던 피터 루이스는 평상시 접하는 미술품이 알게 모르게 사람의 기존 관념을 깨고 새롭게 사고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에게 창의력과 독창성을 키워주기 위해 매년 5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젊은 작가들의 혁신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유명작가의 작품 한점을 사기에도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무명작가의 작품은 200-300점까지 넉넉히 살 수 있었다.

이 회사 직원은 식당이나 로비 같은 공공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사무실에 원하는 작품을 걸어 놓을 수 있다. 이처럼 그림들을 마음대로 걸어놓고 볼 수 있게 되면서 이 회사에서는 혁신적인 보험상품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미술품이 회사 분위기와 기업 문화를 알게 모르게 형성해 직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다.
프로그레시브의 소장품은 현재 5천여 점에 이르며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품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천문학적인 금전적 가치를 떠나 이회사의 컬렉션은 항상 매스컴의 화제에 오르내린다. 무수히 많은 상을 받았고, 유명 미술관들도 대여를 요청할 정도로 그림은 회사의 자존심이며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귀중한 자산이다.

요즘 우리나라에 문화 마케팅을 하는 기업이 많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 마케팅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내부 고객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일반 소비자 대상의 문화 마케팅 보다는 회사내부 직원들 대상의 문화 마케팅이 오히려 더 중요한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소비자와 기업들이 균형된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겸 이마스(www.emars.co.kr) 운영자

* 이글은 현대기아자동차의 사보인 [모터스라인]에 2004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