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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란 영화가 있다.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은 왜 불면증을 겪고 있는 것일까? 지나치게 많이 마신 커피 때문은 아닐까?

영화 스토리상으로 볼 때는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시애틀과 커피와는 범상치 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스타벅스의 본사가 시애틀에 있고, 지난해 스타벅스에 합병된 시애틀즈 베스트 커피 또한 본사가 시애틀에 있다. 또 우리나라에도 최근 진출한 커피 프랜차이즈인 툴리스도 시애틀에 본사가 있다. 이 3개사 모두 에스프레소 커피점이다. 왜 하필 시애틀에 유명한 에스프레소 커피 회사들이 이렇게 몰려 있는 것일까? 우연일까? 아니면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우선 시애틀이 어떤 지역에 위치해있나 보자. 미국 북서부의 끝에 위치해 캐나다와 인접해있다. 서안해양성 기후이고 인근에 큰 산맥이 있어 바다에서 밀려오는 습기 많은 기단이 높은 산맥에 부딪혀 비가 자주 온다.

비가 부슬부슬 많이 오면 으스스 춥고 기분이 우울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시애틀이 미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추운 느낌과 우울한 기분을 없애려면 따뜻한 커피 같은 각성제가 필요하게 된다.
　
시애틀은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에 항상 들어간다. 그것도 1위, 2위다. 주민 구성을 보면 다른 대도시에 비해 백인의 비율이 매우 높다. 그리고 1인당 소득수준이 매우 높다. 에스프레소 커피는 다른 커피에 비해 가격이 매우 비싸지만 소득수준이 높은 주민들에게 이정도는 별로 부담이 안된다. 따라서 에스프레소 커피에 대한 수요가 풍부하다.
　
또 시애틀과 그 인근에 본사가 있는 회사로는 보잉 항공사, 코스트코 회원제 할인점, 노드스트롬 백화점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사, 아마존사가 있다. 밤 늦게까지 일을 해야하는 회사들이 많이 있다. 물론 비즈니스 환경은 다른 대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러한 바쁜 도시 환경이 커피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데 기여함은 분명하다.
　
이상에서 이야기한 지리학적 이유와 인구통계학적인 이유 그리고 비즈니스 환경은 에스프레소 커피에 대한 수요를 복합적으로 만들어내 좋은 에스프레소 커피샵들이 많이 생겨나게 하는 토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경쟁 커피샵들이 경쟁적으로 우후죽순 생기면서 더욱 맛있는 커피와 멋진 분위기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경쟁이 품질을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1970년대에 스타벅스, 시애틀즈 베스트 커피, 그리고 1990년대에 툴리스 같은 좋은 커피샵들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크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인기를 듬뿍 받고 있는 소형 단독 커피샵들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시애틀에는 유난히 커피샵이 많고 아침에는 커피샵에 사람들로 북적댄다. 커피 잔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다른 도시에 비해 많다. 한마디로 시애틀과 커피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미국 전체 도시중에 시애틀은 인당 칫솔 판매 개수가 제일 많다. 칫솔이 헤질 때까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감안하여 칫솔을 자주 바꾼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커피를 많이 마시는 시애틀 사람들은 치아가 검어질까봐 더욱 칫솔질을 하는 것은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든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겸 이마스(emars.co.kr) 운영자

* 이글은 경제일간지 머니투데이(2004년 6월 1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