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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여성 철학자이자 문필가로 이름을 드날린 시몬느 보봐르가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적이 있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키워진다.”고… 그럼 명품은 처음부터 명품으로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명품으로 키워지는 것일까… 당연히 후자다.

우리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명품을 보고서 명품은 처음부터 굉장한 장인이 놀라운 기술로 명품을 만들어 탁월한 귀족 마케팅으로 구사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물론 절대로 그렇지 않다.

명품은 다른 여느 제품처럼 그리 탁월하지 않은 사람이 대단한 노력과 창의성으로 꾸준히 제품을 만들어나가면서 약간의 운과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나가면서 명품으로서의 지위를 차근차근 얻어나갔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명품에는 의류, 가방, 보석, 만년필, 자동차, 칼, 화장품, 가구, 구두, 카메라, 오디오, 와인, 위스키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면 여러 제품군중 특이한 탄생 비결을 가진 브랜드들의 탄생 과정과 성공 비결을 한번씩 보기로 하자.

영롱한 크리스탈의 대명사, 스와로브스키

사실 크리스털은 유리를 절단,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다이아몬드를 이미테이션한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천연 광석이기 때문에 공급이 제한되어 있어 가격이 매우 높기 떄문에 이에 대한 대체제로 나온 것이 크리스털이다. 그렇지만 정교한 커팅 기술로 인해 크리스털은 또하나의 예술작품 수준으로 승화하고 있다. 이중 스와로브스키는 바카라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크리스탈 명품 브랜드다.

지금은 체코에 속해있는 보헤미안 지방은 17세기초부터 유리제조와 유리커팅 기술로 유명하여 유리산업의 중심지였다. 유리 커팅 기술자를 아버지로 둔 다니엘 스와로브스키는 유리에서 크리스털을 직접 손으로 만드는 수공업 방식에서 탈피하여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크리스털 커팅 기계를 발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1895년 오스트리아 서부의 알프스에 둘러싸인 티롤 지방의 와텐스라는 작은 마을로 이주해 크리스털 커팅 공장을 세웠다. 이 회사의 특수절단기는 아직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은밀한 기술 개발이 명품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제품 하면 맨 처음에 떠오르는 것이 동물 형상의 크리스털 제품이다. 사자, 돌고래, 잠자리, 거북, 고슴도치, 산양 등 지금까지 만들어진 동물 형상이 무려 130여 종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 제품이 호사가들의 수집용 대상이 되도록 수량을 제한하여 한정 마케팅을 하였는데, 대성공을 거두었다.

나폴레옹을 숨겨준 대가로 커진 보석상, 쇼메

과거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석 산업의 가장 큰 고객은 왕실 사람들이었다. 2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최고의 자존심 쇼메(chaumet)가 오늘날 세계 최고의 주얼리 하우스로 인정 받게 된 것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가문과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1780년 에띠엔느 니또가 창업할 당시의 쇼메는 작은 보석점에 불과했다. 어느 날 밤 어떤 군인이 다급하게 이 점포에 뛰어들어왔는데 주인인 니또는 그를 가게에 숨겨주고 후대했는데 그가 바로 장교 시절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자신을 구해주었던 니또에게 왕관과결혼 예물을 제작케 했다. 그때부터 쇼메는 프랑스 왕실과 인연을 맺고 전속 보석 세공사로 활약하면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처럼 우연한 기회에 상류사회로 진입한 명품도 있다.

유럽의 귀족적 분위기의 만년필, 몽블랑

세계 최초의 만년필은 1884년 미국 뉴욕의 보험판매원인 워터맨이 발명했다. 하지만 최고의 명품 만년필은 미국이 아니라 1906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몽블랑(Mont Blanc)이다. 몽블랑은 유럽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서 봉우리가 눈으로 덮인 하얀 산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몽블랑 만년필은 검은색 원 속의 육각형 모양의 하얀 별(White Star)을 심벌 마크로 사용하고 있다. 이 문양은 만년필 뚜껑에 새겨져 있는데 눈덮인 몽블랑 산봉우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후, 독일이 대공황기에 빠졌던 1924년에 「傑作(걸작)」을 의미하는 ‘마이스터스튁(Meisterstuck)’이란 세계 최고급품을 탄생시켰다. 이 제품은 수공 제작, 인체공학적인 설계, 금(18k)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펜촉, 그리고 출시 이후에 한 번도 변형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제품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모델이다. 국제적인 협약에서는 몽블랑 만년필이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몽블랑은 ‘역사는 우리가 쓴다’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여권 운동가였던 사람이 패션 디자이너로 탈바꿈한 프라다

프라다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명품 패션가였으나 아들대에 와서는 경영상의 위기를 맞게 되어다. 그래서 여권 운동가이자 정치학 박사 출신인 여성 미우치아 프라다가 가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그동안 써오던 가죽이 아니라 천막용 텐트로 쓰이던 새로운 소재를 이용하여 프라다 백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대히트를 쳤다. 가볍고 질긴 소재가 소비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다. 이처럼 명품도 구태의연하게 과거의 소재와 디자인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성능을 최우선시하는 자동차, BMW

자동차가 생긴 이후 가장 귀족적인 차 하면 우리는 미국의 캐딜락, 독일의 벤츠를 머리에 떠올린다. 하지만 이 두 차중 캐딜락은 과거의 럭셔리 차에 불과하다. 벤츠도 이제는 그 왕좌 자리를 점차 독일의 BMW에 물려주고 있다. 물론 일본의 렉서스가 만만치 않지만 현재 전세계 최고의 명품 차 하면 BMW다.

BMW는 1916년 뮌헨에서 창업자 구스타프 오토, 칼 라프 등에 의해 항공기 엔진공장으로 출발했다. 세계 2차 대전 중 BMW는 전세를 역전시킬 고성능 전투기 엔진 개발을 앞두고 있었으나 독일의 패망으로 엔진 개발에 실패한다.

전후 BMW는 항공기 엔진 생산중지 처분을 받는 등 불이익을 당하여 모터사이클을 만들었으며 모터사이클의 대성공에 힘입어 자동차로 그 사업 영역을 넓혔다. 스웨덴의 사브(Saab)가 원래 비행기 회사였다가 자동차로 사업영역을 확대한 것과 유사하다. 최고의 자동차(The Ultimate Driving Machine)을 줄곧 지향해온 BMW는 캐딜락처럼 단순히 배기량이 많다거나 호화스러움이 아니라 성능(Performance)으로 승부수를 걸어 오늘날의 명품 자동차로 등극했다.

자연주의 화장품 시슬리

이제 우리 피부는 화학물질 투성인 화장품들의 실험실이 아니다. 자연에서 직접 채취한 식물에서 추출한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시슬리는 이런 추세를 일찍 간파하여 화장품의 신명품이 되었다.

시슬리 화장품을 탄생시킨 것은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부터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의 유베르 도나노 백작부부이다. 도나노 백작 부인은 폴란드의 왕족 출신으로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유럽의 곳곳을 다니며 아름다운 자연을 접하며 자랐다. 때문에 풍부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미적 감성에 일찍이 눈을 뜨게 되었다.

식물의 놀라운 효과를 가진 최고급 화장품을 만들겠다는 도나노 백작 부부의 집념은 13여 년에 걸친 식물학자들과의 노력 끝에 1976년 시슬리의 탄생을 보게 된다. 시슬리라는 브랜드 네임은 프랑스 인상파의 순수 풍경 화가인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에서 따온 것이다. 순수한 풍경화에 자연의 모습을 담으려 했던 화가 시슬레처럼, 화장품에 자연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이념을 담은 것이었다. 제품의 특성과 아주 걸맞는 브랜드 네임이 아닐 수 없다. 제품의 성능에 자신 만만 했던 시슬리는 소비자들이 자사 제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샘플을 돌리는 샘플 마케팅을 구사하여 큰 효과를 보았다.

발의 편의가 최우선인 페라가모

1898년 이탈리아 나폴리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페라가모는 어렸을 때부터 신발에 대한 큰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 겨우 9살때 여동생에게 신발을 처음으로 만들어준 이래 페라가모는 13살에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여성 전용 맞춤 구두점을 차려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마디로 신발에 관해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준 것이다. 16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작은 영화 스튜디오인 아메리카 필름 컴퍼니 옆에 구두 가게를 차렸는데, 이 가게는 당대 영화 배우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이처럼 페라가모의 사업이 번성하게 된 주요한 이유는 그가 ‘발의 편의’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신발의 색이나 전체적인 스타일과의 밸런스를 주로 보았을 뿐, 발의 편함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페라가모는 카메라 앞에 선 여배우들이 신발이 불편하다고 불평하는 것을 보고 여성들에게 세련되면서도 편안한 신발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를 위해 페라가모는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접근했다. UCLA 대학에서 해부학을 공부하면서 ‘발’에 대한 연구를 거듭한 결과, 사람의 전 체중이 발의 중심인 장심에 쏠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장심 부분을 떠받치는 기능을 보완하여 발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고 걸을 때 발이 앞으로 밀리지 않도록 하였다. 이런 식으로 페라가모는 자기만의 독특한 구두 제조 기법을 탄생시켰고, 오늘날의 명품 페라가모가 된 것이다.

벨기에의 명품 초콜렛, 고디바

고디바 쵸콜렛은 1926년 초코렛 장인인 조셉 드랍(Joseph Draps)이 벨기에 브뤼셀의 그랑드 플라스 광장 한 귀퉁이에 초콜렛 상점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고디바는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를 다스리던 영주의 고귀한 부인 이름으로 명성이 높은 초콜렛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상점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다.

요즘 초콜렛 회사는 식품 회사가 아니라 디자인 회사라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초콜렛 맛도 중요하지만 제품 디자인과 포장이나 매장 인테리어 등 디자인 측면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백화점 내부나 전문 매장이 많아 초콜렛의 명가로 군림하는 데 전혀 손색이 없다.

명품이 되기 위한 조건

그럼, 위에서 이야기한 그런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구비해야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 자체의 기능이 탁월해야 한다. 이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명품을 만드는 사람은 제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나름대로의 고집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냥 시류에 따라 제품을 이렇게도 만들고 저렇게도 만든다면 그때는 반짝 인기를 얻을 수 있을 지 모르나 오래 가지 않는다.

그리고 전통도 중요한 요소다. 명품이 스테디셀러였다는 사실 자체가 오랜 전통을 대변해주고 그로 인해 높은 브랜드 파워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요즘 와서는 새로운 명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전통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또 명품이라고 하여 항상 전성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버버리도 할리 데이비슨도 프라다도 중간에 경영 위기를 맞아 명품의 지위에서 추락해 회사 자체가 사라질 뻔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끈질긴 회생 노력으로 브랜드가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명품의 저력이다.

그리고 명품은 제품 자체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며 해당 국가의 후광효과가 매우 중요하다. 파키스탄의 캐시미르처럼 후진국에서 명품이 나올 수도 있지만 선진적인 문화가 그 상품에 배어있으면 명품으로 발돋움 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좀 우스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명품의 마지막 조건은 가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짜, 짜가, 짝퉁이 없다면 우리가 진짜 명품이라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러면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명품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물론 있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도자기는 고려시대부터 전세계적으로 유명했지만 전통의 단절이 있은 후 이제 다시 비상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상품의 질을 올리고 명품 브랜드 전략을 구사하는 노력은 물론이고, 국가 차원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올리는 국가 마케팅이 필수적이다. 명품은 그나라의 문화와 더불어 팔리는 문화상품이기 때문이다.

또 프랑스의 코미테 콜베르(Comite Colbert)처럼 명품업체들의 로비 활동도 매우 중요하다. 코미테 콜베르의 중요한 역할은 프랑스의 품격 높은 문화를 전세계에 알려 프랑스의 명품이 더불어 격상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명품 로비단체가 탄생하는 시기가 빨리 와서 우리나라 문화의 전령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emars.co.kr)

이글은 대상그룹 사보(2004년 7월)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