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얼 분야의 라이벌 기업 : 켈로그 vs 포스트 (2015-12-15)


 
  시리얼 분야의 라이벌 기업 : 켈로그 vs 포스트

아침 식사로 밥을 먹는 사람도 많겠지만 간편하게 시리얼을 먹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미국 가정에서는 아침 시간에 시리얼에 우유를 넣어 먹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4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 가정은 시리얼이 아니라 계란과 햄으로 아침 식사를 많이 했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에 당시 출산률 하락으로 켈로그(Kellogg) 회사의 주력 제품인 시리얼 매출이 감소하고 있었다. 매출을 반등시키기 위해 이 회사의 윌리엄 라모스 회장은 베이비부머 세대를 타겟으로 대대적인 아침식사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25~49세 미국인 중 시리얼을 먹는 비율이 5년 후 26%나 증가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켈로그 회사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켈로그 창업자 가족은 1860년대에 큰 충격에 휩싸인다. 집안 사람들이 연달아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이런 충격을 겪었던 존 켈로그와 그의 동생 윌 켈로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1890년대에 자신의 고향 배틀크릭(Battlecreek)으로 돌아와 환자들의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요양원을 만든다. 술, 담배, 카페인, 고기를 멀리하고 곡식 중심으로 절제된 식단을 짜서 식이요법과 더불어 엄격한 종교생활을 통해 질병을 퇴치하고자 한 것이다.

켈로그 형제는 다양한 곡류를 가지고 음식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던 중, 반죽하여 익혀 놓은 밀가루 덩어리를 부엌에 밤새 방치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퀴퀴해진 반죽을 롤러로 아주 얇게 밀어 구웠더니 바삭바삭 아주 작게 부서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먹기에 간편하고 맛도 좋은 시리얼, 즉 콘플레이크(corn flakes)였다. 눈송이는 영어로 snowflake이다.

배틀크릭 요양원에 머물고 있던 찰스 포스트(Charles W. Post)라는 청년은 다른 종교로 개종하면서 이 요양원을 떠나게 된다. 구내에서 제공되던 시리얼에 관심이 많아 켈로그 형제에게 자신이 시리얼 라이선스를 가질 수 없는지 문의했다. 존 켈로그는 요양원 내부의 특별 요양식을 외부에 제공하기를 거절했다. 하지만, 포스트는 무단으로 시리얼을 제조해 그레이프 넛츠(Grape-Nuts) 브랜드로 1897년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인기가 치솟자 다른 시리얼 회사가 40개나 우후죽순 생겨나게 된다.

이런 폭발적 인기를 목격한 동생 윌 켈로그는 형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1906년 천연 옥수수를 원료로 하는 콘플레이크를 제조하는 식품회사를 설립한다. 다른 경쟁사에 비해 늦게 시작했지만 시리얼의 실질적인 원조였기 때문에 판매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1907년에는 캐나다, 1922년에는 영국에도 판매했다. 우리나라에는 농심과 합작하여 1981년에 농심켈로그가 설립되었다.

그 후 포스트푸드(Post Foods)는 1985년에 제너럴푸드(General Foods)에 매각되고 제너럴푸드는 다시 크래프트(Kraft)에 매각된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포스트는 다시 별도 회사로 독립하면서 하니콤, 100% 브랜, 레이진브랜, 골든 크리스프로 다시 인기를 끈다. 2013년부터 2015년에 이르기까지 포스트는 시리얼, 파스타, 스포츠 영양보조식품, 냉동감자식품 회사들을 연달아 인수하면서 몸집을 크게 키우고 있다.

켈로그는 콘플레이크 일색에서 아몬드, 초코, 후르트링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늘린다. 또 스낵, 쿠키, 크래커, 와플, 시리얼 바를 생산하는 기업을 인수하여 매출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켈로그 매출의 반 이상은 시리얼에서 나오고 40%는 스낵에서, 5%는 냉동식품에서 나온다. 2014년 148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켈로그 제품은 18개 국가에서 제조되어 180여 개 국가에서 판매되고 있다.

똑같이 미시건 주 배틀크릭에서 설립된 두 회사는 이제 본사의 위치가 다르다. 포스트의 본사는 현재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지만 켈로그의 본사는 아직도 미시건주 배틀크릭에 자리잡고 있다.

글 :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mjkim896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