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침몰 100주년을 맞이하여 (2012-04-05)


 
  올 4월은 타이타닉(Titanic)호 침몰 100주년 되는 해다.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샘프턴을 처녀 출항하여 프랑스 쉘부르와 아일랜드 퀸스타운(지금은 코브(Cobh)로 이름이 바뀌었음)을 거쳐 뉴욕을 향해 전속력으로 바삐 가다가 달까지 뜨고 수면도 매우 고요한 4월 14일 밤 11시 40분에 빙하와 부딪혔다. 그로부터 160분 후인 4월 15일 새벽 2시 20분에 칠흙 같은 물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이 사고로 탑승객 2,200명(정확히는 2,195명)의 68%인 무려 1,500명이나 사망했다. 초호화여객선 타이타닉의 침몰은 그 당시 매우 센세이셔널한 사건으로 당시 주요 신문 1면에 대서특필 되었고, 그 후 수많은 책, 영화, 뉴스, 경매 등을 통해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어 왔다.

그로부터 100년 후인 올해 며칠 전에는 당시 이 배의 일등석 승객에게 제공되었던 점심 메뉴판이 경매에 나와 우리나라 1억 3천7맥만 원에 낙찰되었다. 이 메뉴판에는 1912년 4월 14일이라고 씌여 있으니 침몰 당일의 메뉴판이다. 미국인 은행가인 워싱턴 도지의 아내가 식사를 마치고 핸드백에 넣어두었다가 침몰 당시 탈출에 성공해 이 메뉴판을 이제까지 보유하고 있다가 경매에서 매각한 것이다.

캐나다 출신인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 주제로 1997년에 ‘타이타닉’ 영화를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제 이 영화가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을 맞아 3D로 바뀌어 다시 상영된다. 예전 영화와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이 영화를 보며 100년 전을 회상해보면 어떨까?

희생자 중 연고가 없는 사람 150명은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핼리팩스(Halifax)시의 무덤에 안치되어 있다. 침몰 100주년을 맞아 핼리팩스에서는 타이타닉과 관련되어 봐야할 곳 17군데를 정해 놓았다. 기념음악회도 하고 ‘Titanic the Canadian Story’라는 다큐멘터리를 캐나다공영방송인 CBC에서 방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을 진짜 기념하려면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타이타닉 호는 지금도 북대서양 해수면 아래 3.9km에 가라앉아 있다. 거기로 가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타이타닉 침몰 100주년에 맞추려고 하는 듯 2012년 1월 지중해에서 크루즈가 침몰했다. 세계 1위 크루즈 기업인 카니발 사의 이탈리아 자회사인 커스타 크로시에레 사가 운영하던 코스타 콘코르디아(Costa Concordia) 호가 4,200여 명의 승객을 태우고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서쪽에 있는 질리오 섬 인근을 항해하다가 암초에 부딪혀 그만 침몰하고 만 것이다.

암초와 충돌후 배는 곧바로 기울었는데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은 승객에게 안심하라고 말하면서 40분이나 대피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 결과 11명이 사망했고, 최소 28명이 실종했다. 대서양 한 복판에서 한 밤중에 침몰했던 타이타닉과는 달리, 이 크루즈의 침몰 장소는 육지에서 가까웠고, 해가 완전히 지지 않은 저녁 8시경이었기 때문에 큰 사고로 확산되지 않았다. 타이타닉호의 존 스미스 선장은 배 침몰과 함께 수장되었지만, 이 크루즈의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은 판단 착오와 승객이 모두 대피하기 전에 먼저 배를 버렸다는 도덕적 양심 부족의 비난을 받으면서 경찰에 잡혀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 들어 유럽의 경제가 매우 좋지 않고 석유 가격도 높아 크루즈 회사가 고객 확보에 애로를 겪고 있고 수익성도 악화되고 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예약을 가장 많이 하는 1월에 이런 대형 사고가 터져서 고객 확보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타이타닉 침몰 당시에는 사고 여파로 여객선 이용자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통계를 보면 크루즈 사고는 비행기 사고에 비해 낮다. 이번 사고로 인해 크루즈 여행이 일시적으로만 타격을 받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