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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올해에 걸쳐 우리나라에 정의가 갑자기 핫 이슈가 되었다.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 책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읽기가 그리 쉽지 않은 이 책이 미국에서는 전혀 히트를 치지 못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이유 때문에 히트를 쳤을까?

저자인 마이클 샌델이 하버드대 교수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출판사가 하버드대 강의실에서 마이클 샌델이 강의하는 내용을 동영상으로 찍어 책에 DVD로 넣었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정치인을 비롯하여 유명인들이 대중매체에서 이 책에 대해 언급하게 한 명사 마케팅 때문에 그랬을까? 여러 이유가 거론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다른 것에 비해 사회적 자본인 정의가 상당히 부족했는데 이 책이 사람들의 그러한 갈증을 해소해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책을 많이 구입했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다.

최근 몇 년간 ‘착한’이라는 기워드가 화두다. 이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어질다’라고 되어 있다. 영어로는 good, nice이다. 최근 들어 ‘착한 소비’, ‘착한 여행’, ‘착한 기업’ 같은 트렌드 키워드가 떠오른다는 것은, 반대로 우리가 그 동안 개념 없는 소비, 과다한 소비, 호화 여행, 흥청망청 여행을 했다는 말이기도 하고 기업들은 이윤만 추구하는 나쁜 기업이었다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선생님으로부터 ‘나쁜 마음을 먹지 말고 나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물론 커가면서 착하지 않게 마음먹고 행동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많이 체감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샌가 ‘착한 사람’은 어딘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자신을 잘 챙기지 못한 어리숙한 사람으로 이해되고 있다. 또 개성이 없고 장점도 없고 말도 없고 아무튼 시시한 사람으로도 이해되기도 한다.

물론 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항상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거짓말을 일삼아 고속 승진을 했지만 나중에 그것이 드러나 정상에서 급추락하는 경우가 있다. 기업이 이익을 위해 직원을 착취하다가 내부고발자에 의해 그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세무사찰로 인해 파산하는 경우도 있다. 잘 나가던 국제금융기관의 수장이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옥살이를 하는 경우도 최근 우리는 목격했다.

이런 경우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와 더욱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착한 행동의 가치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우리의 주위 환경이 어떻게 변했길래 착한 트렌드가 자리를 잡았을까?

우선, 사람들이 똑똑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더라도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서로 단합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접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어서 외부의 다른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즉각 알 수 있고, 자신의 상황이나 느낌을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순식간에 알릴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나쁘게 행동하다가는 자신에 대한 나쁜 소문이 순식간에 나돌기 때문에 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이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여유로워져 윤리적인 이슈에 눈을 돌리고 있다. 과거에는 돈을 벌기 위해 착하지 않은 행동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윤리적인 이슈에 관심이 생겼다. 한 마디로 말해 윤리에 가치를 더 두기 시작한 것이다.

셋째, 사람들은 착하다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업이 지속가능경영에 관심을 많이 두게 된 것으로 보면 잘 알 수 있다. 사람들의 경제적 활동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사회이고,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바로 환경이다. 환경이 망가지면 사회가 망가지고 연이어 경제도 망가진다. 그러면 우리가 설 곳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살기 위해 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도 상징되는 기후변화 이슈는 기업이나 개인의 행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소비자가 기업에 비해 파워가 약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소비자가 기업에 비해 파워가 크다. 대기업이 강력하다고 하지만 대기업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소비자다. 소비자 개개인은 약할 지 모르지만 소비자가 뭉치면 파워는 훨씬 커진다. 정치권에서 국민 개개인은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데 경제권에서 소비자는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 자체가 투표권과 같다. 더구나 투표는 일년에 한두 번 정도 행사하지만 구매는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에 더욱 파워풀하다.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라는 미국인이 아르헨티나에 여행을 갔다가 그곳 아이들이 신발이 없어서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 이 아이들을 위해 원포원 기부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보겠다고 다짐한다. 아르헨티나에서 자신이 매우 편하게 신었던 전통민속화인 알파르가타의 바닥은 짚신이었는데 이 신발 밑에 고무창을 대어 탐스슈즈를 처음 만들었다. 그렇게 생긴 사회적 기업이 바로 탐스(TOMS)라는 기업이다. 회사 이름 TOMS는 ‘내일을 위한 신발’의 영어 표현인 Shoes for TOMmorrow에서 따온 말이고 자신도 CEO가 아니라 ‘최고 신발 기부자(Chief Shoe Giver)’라는 직책을 사용한다.

마이코스키는 이 신발을 판매할 때 원포원(one for one) 마케팅 전략을 도입했다. 일종의 매칭펀드 방식인데, 소비자가 자사 상품인 신발을 한 켤레를 살 때마다 또하나의 한 켤레를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기부하는 것이다. 물론 소비자가 신발을 들고 저개발국가에 가는 것은 아니고 이 신발회사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대신 신발을 전달해준다. 물론 이전에도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기부하는 회사는 존재하였지만 내가 하나 사면 다른 사람이 완전한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공익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전개한 기업은 그 동안 별로 없었다.

2007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2010년까지 100만 켤레 이상을 판매했다. 이 신발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는 미국인데, 두번째로 많이 팔리는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한국이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착한 기업이 부족하고 착한 소비자가 많지 않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 왔는데 이 사례를 보면 향후 전망은 그리 어둡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지리산 능선을 따라 1박 2일로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다.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가는 도중의 벽소령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지리산 지역에 오는 등산객들은 치약과 비누 사용을 자제한다는 것을 알았다. 비누나 샴푸를 쓰면 물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산에서는 ‘야호’ 소리도 자제하는데 소음을 내면 새와 동물들을 놀라게 하기 때문이다. 요즘 각 도시마다 야경을 멋있게 만들기 위해 산에도 밤에 밝은 전등을 켜고 있는데, 그러면 새들과 동물들의 야행성과 수면 시간, 심지어는 생식활동까지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요즘 멀리 히말라야로 하이킹을 떠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등반과 트레킹 자체를 즐기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줍기 위해 가는 사람들도 있다. 또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에 가서 그곳 주민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재정적 지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발적 책임여행주의자인 것이다. 히말라야로 갈 때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 비행기가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자신이 배출하는 탄소를 제로(0)로 만들기 위해 그만큼의 나무를 심기도 한다. 여행도 좋지만 이에 따른 환경 부담을 줄여주어야 오랜 동안 지속가능한 여행이 가능해진다. 이런 것이 바로 책임 있는 생태여행이고 착한 여행이다.

사람들은 왜 착한 생태 여행을 하려는 것일까. 우선, 좋은 환경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심신을 단련할 수 있다. 둘째, 단지 자연을 즐기기 위한 목적보다는 자연에 대해 좀더 많이 알고 환경의 중요성을 체험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자녀들을 위한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셋째, 자연의 소비자라기 보다는 자연을 보호하는 일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사회봉사와 자아실현을 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과연 착해질 수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 기업도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정의가 없음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갈망한다. 착한 기업은 자신이 착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착한 행동을 할 때 더욱더 효과적이다. 기업들이 착해지면 고객들은 물론이요 직원, 우리 전 세계가 행복해 질 수 있으며 이는 곧 기업의 가치를 한껏 올릴 수 있다.

소비자 또한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제대로 된 정보와 의식을 가지고 소비를 제대로 한다면 소비자는 착한 기업을 살리고 소위 나쁜 기업을 얼마든지 제거할 수 있다. 소비자 자신이 지닌 파워가 얼마나 대단한 지를 충분히 아는 것이 착한 사회를 만드는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 이 글은 우리은행 사보에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가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