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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방송의 베이징, 상하이 특파원으로 중국에서 20년간 체류한 경험을 토대로 던컨 휴잇(Duncan Hewitt)이 [선부론(先富論)]이라는 책을 썼다. 영어로는 'Getting rich first'이다. 덩샤오핑이 우선 경제성장부터 하자고 주창한 데서 시작된 용어다.

리드앤리더의 김민주 대표와 리드앤리더 사례분석가인 송희령님이 공동번역한 책으로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2008년 3월 15일(토)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매경, 한경 신문에서 이 책을 크게 취급하여 소개했다.

역자의 글과 동아일보 서평을 여기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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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부론] 역자 서문

2007년 역자는 TV드라마 ‘대조영’을 유난히 열심히 시청하였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의 방영 시간에는 다른 약속이 겹치지 않도록 할 정도로 매니아 시청자였다. ‘대조영’ 외에도 ‘태왕사신기’, ‘연개소문’, ‘주몽’ 같은 TV드라마가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많이 제작되고 시청자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전개했던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꺼림칙한 관계에서 보듯이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나라와는 이처럼 갈등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인접 국가와는 항상 갈등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화해화 협력도 수시로 이루어진다. 서로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가 되면 엄청난 시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저임금에서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중국 때문에 우리나라의 저가 상품 생산은 치명타를 입지만 우리나라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낮은 가격에 상품을 살 수 있어 생계비가 줄어들고, 인적 자원이 좀더 생산적인 업종으로 오히려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므로 구조조정 찬스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비평가들은 중국으로 인한 부작용 부분만 지나치게 강조하지만 좋은 부분도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분명 있다.

중국 국영방송인 CCTV가 3년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만든‘대국굴기’라는 역사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가. 이 다큐를 보면 이제 중국의 시대가 임박했음을 알 수 있다. 1500년 이후 전 세계 강대국의 바톤이 포르투갈, 스페인, 네델란드,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일본, 미국을 거쳐 중국으로 넘어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1500년 이전의 강대국은 물론 중국이었다. 500년만의 강대국 탈환 과정이다. 이 다큐에서는 중국의 시대가 곧 온다는 것을 강조한 대목은 한번도 나오지 않지만 시청자들은 그러한 느낌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21세기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아니라 팍스 시니카(Pax Sinica), 즉 중국의 평화시대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물론 미국 옹호론자들은 팍스 시니카를 근거 없는 지나친 예측으로 치부한다. 글로벌 투자기관인 골드만삭스도 2040년경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세계경제에는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속단할 수는 없지만 중국이 미국, EU(유럽연합)과 함께 세계 강자임은 분명하다.

요즘 세계경제를 말할 때 중국을 빼고서는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은 나온 지 오래되었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일컫는 브릭스(BRICs)라는 조어를 골드만삭스가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중국과 인도를 일컬어 친디아(Chindia)라는 조어가 만들어졌고, 펀드에도 친디아 펀드가 생겼다. 또 브릭스, N11(한국, 멕시코, 터키,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고성장을 하는 11개 넥스트 국가)을 총칭하는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 즉 신흥시장이라는 말도 나왔다.

경제성장 측면에서 중국의 파워를 한번 보자. 중국은 2003년부터 2007년에 이르기까지 연 경제성장율이 10% 이하로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시장조사기관인 글로벌인사이트의 예측에 의하면 향후 20년간 중국의 연평균 경제성장율은 8.6~13.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추세라면 중국의 GDP는 2020년경 일본을 앞서기 시작해 2040년경 미국과 비슷해진다.

2007년 현재 중국의 위상이 어떠한지 한번 보자. 면적은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 3위, 인구는 13억 명이 넘어 세계 1위, 구매력평가환율(PPP) 기준의 GDP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랭크되어 있다.

2007년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 중에 중국 기업은 24개이다. 일본의 67개 기업에 비하면 아직 역부족이지만 한국 기업 14개에 비하면 중국은 한국을 이미 추월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보면 기업 규모 때문에 중국기업이 세계 10대 기업 중에 5개나 차지했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고 기업은 중국 정유회사인 시노펙이다.

그런데 브랜드 측면에서 볼 때 중국 기업의 파워는 아직 약하다. 전 세계 100대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매년 발표하는 인터브랜드에 의하면 일본 기업은 8개, 한국 기업은 3개인데 반해 중국 기업은 아직 브랜드 가치 100대 기업 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중국이 이처럼 고성장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인구 대국이고 내수 시장이 크다. 인구 대국은 움직이기가 어렵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오랜 기간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까지 서구 열강에 의해 철저히 유린 당했고, 마오쩌둥의 공산화 이후 문화혁명의 회오리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부국강병책에 의해 힘을 키워오다가 등샤오핑의 개혁과 외교정책에 힘입어 중국에 대한 선진국의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들어서 중국은 본격적으로 고성장 시기에 진입했다.

어떤 중국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과거에 러시아가 공산화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중국이 공산화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사람들이 그만큼 실용적이고 자본주의적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20세기 초반에 중국의 정치가 얼마나 형편없길래 공산화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냐는 것이다. 불가피한 과정이었겠지만 중국은 오랜 진통 기간을 거쳐 등사요핑의 실용주의 노선이 채택됨에 따라 중국은 성장 가도에 불을 붙였다. 고양이의 색깔이 무엇이든지 쥐만 잘 잡으면 되고, 발바닥에 느껴지는 돌의 느낌만으로 강을 건너야 한다는 등샤오핑의 생각과 추진력이 지금의 중국을 만든 것이다.

여러모로 판단컨대 중국은 앞으로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세계최고가 될 수는 없겠지만 2050년경이 되면 총 GDP가 미국을 능가하여 세계 최고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럴 경우 우려되는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거 유럽과 미국식으로 에너지 소비형 생산이 이들 나라에서 지속된다면 공해 문제, 지구온난화 문제 등 환경이 크게 악화될 것이며 선진국으로부터 환경 압력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 인접해 있는 우리나라에 미치는 악영향은 크게 우려스럽다. 따라서 중국은 기존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생산 방식을 도입하여 세계경제를 주도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시아의 강국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면서 샌드위치라고 자조하지 말고 샌드위치 위상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샌드위치의 맛은 위 아래의 빵의 맛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 끼여있는 음식의 맛에 의해 좌우된다. 더구나 우리나라가 남쪽 해양으로 그리고 북쪽, 만주와 몽고, 극동 시베리아로 확장한다면 샌드위치의 맛은 물론 크기가 더욱 볼 만 해진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이고, 특히 동아시아의 시대이다. 우리나라의 역할이 더욱 기대되는 절호의 찬스임을 결코 잊지 말자.

원제가‘Getting rich first’인 이 책은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계속 살았던 중국인이 쓴 책도 아니고,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계속 살았던 외국인이 쓴 책도 아니다. 외국에서 태어났지만 중국에서 20여 년간 살았던 외국인이 쓴 책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시각과 체험적 시각이 잘 버무려진 책이다. 보통 외국인이 특정 국가에 대해 글을 쓸 때 많은 문헌과 약간의 경험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생생한 묘사와 정확한 분석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던컨 휴이트가 쓴 책은 그런 틈새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더구나 이 책은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가 그동안 어떻게 변해왔고, 또 현재의 막강한 중국을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대해 종합적으로 묘사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저자는 BBC 중국 특파원과 언론인으로서 중국에 오래 체류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가를 알려면 이 책에 있는 감사의 말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지를 보면 될 것이다. 이 책은 오랜 기간 발로 뛰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체험을 손으로 일일이 적은 노고의 산물이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에 많이 가고 여행을 많이 감에 따라 체험적 여행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던컨 휴이트처럼 외국을 좀더 생생하고 심도있게 분석하는 저자들이 앞으로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김민주, 송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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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천지개벽 ‘중국 20년’…‘선부론’

◇선부론(先富論) / 던컨 휴잇 지음·김민주, 송희령 옮김·644쪽·랜덤하우스코리아

영국 출신인 저자가 1986년에 중국에 왔다고 말하면 중국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옛날에 왔단 말이에요?”

심지어 한 중국 남성은 “20년 전이면 중국이 이제 막 태어나기 시작한 때”라고 표현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문명권인 중국 사람들이 불과 20년 전을 그렇게 오래전이라고 표현하다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저자가 20년 전 상하이에 갔을 때 좁고 낮은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길을 자전거들이 여유롭게 달리고 있었다. 교통수단은 삐걱거리는 전차가 전부였고 유선전화도 사치품이던 시절이었다. 그런 그곳에 지금은 4000개의 고층빌딩이 빽빽이 들어섰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경기가 방영되는 지하철 여기저기서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소리가 시끄럽다. 21세기 초 중국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중국을 강타하고 있는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얼마나 거센지 실감할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 “인류 역사상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한 최대의 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선부론(先富論). 믿기지 않는 급격한 변화의 기원.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혁명이 휩쓸고 간 폐허에서 1980년대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과 개방의 시대를 선포하며 외친 선언.

“전국 모든 지역, 모든 국민이 한꺼번에 다 부자가 될 수 없으니 국민, 국가 일부 지역만이라도 먼저 부자가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선부론으로 시작된 중국의 극적인 변화에서 기적과 희망을 찾는다. 문제는 찬양 일색이라는 점. 중국의 산업화가 낳은 일상생활의 변화, 그로 인해 드리운 그늘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책의 강점은 바로 그런 부분을 중국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비춘다는 것. 새로 생겨난 개념, 사라져 가는 역사, 10대들의 문화, 성의식의 변화, 빈부 격차, 문화 충격 등 중국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이 겪어야 하는 혼란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공산당 동료를 상징하던 단어인 ‘동지’는 이제 게이나 레즈비언을 상징하는 단어. 과거 지탄의 대상이었던 ‘프티부르주아’적 삶은 이제 고급 잡지가 추천하는 품격의 상징이다.

중국 어느 도시에 화랑을 연 저자의 친구가 마르크스, 엥겔스의 초상화를 걸어뒀다. 지역 관리가 와서 말한다. “고위 관리가 첨단 국제도시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할 테니 떼버리시오.”

하루가 멀다 하고 재개발되는 세태에서 사라지는 전통 건축에 대한 안타까움도 배어난다. 베이징의 400년 된 전통 가옥에 사는 중국 노인은 자기 집 담벼락에 ‘허물어야 할 집’이라 쓰여 있는 걸 보고 망연자실한다. 오랜 세월의 소용돌이에서도 살아남았던 삶의 흔적이 도시 재개발로 사라질 운명을 맞았다. 노인은 집을 떠나야 하는 처지보다 역사와 유적을 아무렇지 않게 없애버리는 사람들의 심보가 밉다.

베이징 사람들은 식당에 저녁식사를 예약할 때 자리가 있는지 묻지 않고 식당 건물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한다. 저자는 이 얘기가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와 오랜만에 단골집을 찾았더니 식당 자리에 대형 건물이 들어섰다. 아쉬운 대로 길 건너 새로 생긴 대형 식당을 찾았다. 음식 맛이 좋아 몇 주 뒤에 다시 갔다. 이게 웬일인가. 건물은 사라지고 도시 건설 계획 예정이라는 표지판만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부의 장밋빛 환상 뒤 가난의 풍경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신흥 부자들이 호화로운 명품을 거둬들이는 시간에 파산한 국영기업 공장의 노동자 수백만 명이 해고당한 채 허드렛일을 찾는다.

1980년대 취직이 어려운 고학력 젊은이를 가리킨 ‘다이예칭녠’이란 말에는 ‘취직을 기다리는 젊은이’라는 희망 어린 뜻이 담겼다. 국영기업이 대량 해고를 감행하던 1990년대 해고자라는 신조어 ‘샤강’이 생겨났지만 ‘잠시 일을 내려놓은 사람’이라는, 여전히 희망 섞인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해고자들에게 희망은 없다. 국가가 대신 책임져주지 않고 개인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시대로 바뀌었지만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그들을 국가는 내동댕이쳐 버렸다.

저자는 체제 변화 속에서 흔들리는 신념도 날카롭게 포착해 낸다. 상하이에는 공산당 창립을 기념하는 박물관 옆에 화려하고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레스토랑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마오쩌둥이 살아 있다면 인민의 생활수준이 이토록 향상된 것에 기뻐할 것”이라며 “경제 발전이 사회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호화로운 것은 수수하고 단순한 공산당의 기본정신과 맞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신념의 혼란, 정치적 허무감에 빠진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모습도 눈에 뜨인다.

이 책은 중국의 변화를 눈에 선할 정도로 생생하게 보여 준다. 1986년 중국에 유학 온 뒤 BBC 특파원으로 활동한 저자가 중국 전역을 발로 뛰어다니며 사람들의 속내를 직접 들은 덕분이다.

- 출처 : 동아일보 (2008-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