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전투를 통해 본 다크 투어리즘 (2014-11-25)


 
  이번 11월에 필자는 크루즈 배를 타고 9박 10일간 동중국해로 여행을 떠났다. 일본의 평화재단과 한국의 환경재단이 공동으로 매년 운영하는 피스앤드그린보트(Peace and Green Boat)에 탑승한 것이다. 부산에서 탑승하여 제주-타이완 지룽–오키나와–나가사키–후쿠오카에 각각 하선하여 평화와 환경 관련 지역을 방문했다. 탑승객 천 명 중에 일본인이 58%, 한국인이 42%였다. 크루즈 배 안에는 매우 다양한 교육/강의/포럼/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한 기항지에서 평균 4~6가지 프로그램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고 자유여행을 할 수도 있다. 필자는 평화 관련 옵션을 주로 택했다. 제주에서는 미군정 시기였던 1948년의 4.3 사건, 그리고 오키나와에서는 태평양 전쟁 막바지였던 1945년의 철의 폭풍 사건 프로그램을 택했다. 역사의 어두운 면을 관광 주제로 삼는 것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고 하는데 제주도와 오키나와 관광이 바로 이런 주제였다. 관광객들이 대절된 버스를 타고 역사 현장을 방문하여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형태다. 그런데 두 지역의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에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오키나와에서 무역으로 번성했던 류큐 왕국은 1879년 메이지 정권에 의해 일본으로 편입되어 독립국 지위를 상실한다. 그래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제 시대의 한국인들처럼 일본에 대해 저항적이었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을 연달아 치르며 15년 전쟁에 돌입한다.

1945년 3월 미군은 오키나와를 대공습하여 오키나와 남쪽에 위치한 나하시의 90%가 파괴된다. 일본군은 미군이 일본 본토 공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오키나와 주민, 학생들을 총동원해 동굴에 들어가는 등 처절한 지구전을 펼친다. 그래서 ‘철의 폭풍’이라 불리는 3개월 전쟁 기간 동안 민간인의 희생이 일본군에 비해 훨씬 많았다. 더구나 일본군은 오키나와에서 탈출하면서 민간인이 군 정보를 미군에게 알릴까 두려워 민간인을 대량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오키나와 현지의 60대 여성 해설사는 이런 오키나와의 어둡고 슬픈 이야기를 나즈막한 목소리로 상세하게 자분자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사실 처음만 하더라도 우리는 별로 재미 없는 해설가를 만났다는 인상이 짙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모두 눈믈을 글썽이며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였다. 관광지에서 눈물을 거의 흘리지 않는 나도 당황할 정도였다. 눈물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나왔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방공호로 쓰던 아부치라가마 동굴을 일본인이 민간인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으로 사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부상자 가족들은 불빛이 거의 없는 굴에서 하루에 주먹밥 하나로 버티며 마취약 없이 수술을 견뎌내야만 했다. 하지만 일본군은 퇴각하면서 이들에게 독약을 주고 집단 자살을 강요했다. 우리는 어두운 굴 속에서 손전등에 의지한 채 조심조심 걸으며 해설을 들었다. 해설사는 우리의 손전등을 모두 끄도록 했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손전등까지 끄고 함께 묵념을 했다.

아주 전망 좋은 해변가에 조성된 널찍한 평화기념 공원에도 갔다. 여기에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죽은 일본군, 민간인, 징병되었거나 위안부로 온 한국인, 미군 등 무려 14만 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 비석이 연이어 서 있었다. 그리 높지 않는 비석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어, 영어, 한국어로 적혀 있었다. 평화기념 공원의 디자인 컨셉은 ‘파도’였다. 이 참사가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태평양 전역으로 파급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원의 바닥도 물결 모양으로, 비석도 파도 모양으로 만들었다.

해설사는 오키나와에서 희생된 한국인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징병되어일본군으로 복무한 한국인 남성, 그리고 200여 명의 한국 여성 위안부 이야기도 해주었다. 전쟁이 끝나고서도 부끄러워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배봉기님이 1990년에 오키나와에서 사망했을 때 오키나와 사람들에 의해 위령제가 치러졌다. 한국인 위령탑에는 이은상 시인의 시가 적혀 있었다.

우리에게 해설을 해준 분은 현재 노인요양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우네 에츠코씨로 1986년부터 지금까지 평화를 전도하는 해설사로 활동해 왔다. 젊었을 때 해외 여행을 즐겨했는데 현지에서 만나는 외국인도 자신과 비슷하게 평화적인데 왜 국가간에는 그렇게 큰 전쟁이 일어나는 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녀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미군 기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일본인들에게 전하고자 지금까지 30여 년간 평화 해설사 생활을 했다. 그녀는 한국과 오키나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평화 구축을 위해서는 생각도 많이 해야 하지만 이를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험, 진정성, 의식 있는 해설사의 면모였다.

관광을 끝내고 크루즈 배가 정박해 있는 나하 항으로 돌아 오면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들은 버스 탑승객들의 생각과 느낌을 듣고 싶다고 했다. 의견을 교환하던 30분 동안 어떤 탑승객은 그녀의 해설에 반했다고 말하기도 하면서 울먹거렸다. 어떤 일본인은 요즘 혐한 발언(hate speech)을 하는 일본인 때문에 한국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고, 과거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 지배하면서 창씨 개명을 강제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죄하기도 했다. 이런 대화 시간은 하루 투어를 정리하는 좋은 기회였다.

이처럼 다크 투어리즘은 인간이 벌인 전쟁, 내전, 환경파괴 등 인간이 과오를 저지른 곳을 찾아가며 제대로 된 진상을 알고 재발 방지를 각오하고 치유도 하는 기회다.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다크 투어리즘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때 진정성과 메시지를 전달하여 관광객의 감성을 흔드는 해설사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오키나와 해설사와는 대조적으로 제주의 남성 해설사는 좀 흥분하는 어조로 아주 신나게 해설을 했다. 또, 조성된 추모공간의 규모는 오키나와에 비해 거대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의 예산 지원도 끊겼다며 관광객에게 구태여 할 필요가 없는 듯한 속이야기도 했다. 다크 투어리즘은 일반 관광지 투어와는 성격이 좀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해설사의 역량을 한 단계 더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글 :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및 ‘하인리히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