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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 많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지구의 자본주의를 줄기차게 박진감 있게 이끌어 나가고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유태인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전세계적으로 유태인은 얼마나 될까. [미국 유태연감 2000]에 의하면 순수 유태인의 숫자는 1,500~1,800만 명에 이른다. 유태인들이 이스라엘에 가장 많이 살고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에 570만 명으로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고 그 다음이 이스라엘로 490만 명이다. 세번째는 프랑스, 네번째는 캐나다이다.

이들이 어느 나라에 살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서로 강력한 동질감과 결속력을 가지고 서로 끈끈하게 지원한다. 머리가 명석한 사람들은 협동심이 약하다고 보통 말하지만 유태인은 그렇지 않다. 상품과 자본이 최고의 수익을 위해 나라간을 마음대로 움직여 다닐 수 있는 자유 자본주의 환경, 즉 WTO나 FTA 체제가 초국적 유태인들이 가장 원하는 경제 환경이다.

지난 105년간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을 우리는 보통 천재라고 부른다. 노벨상에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6개 분야 상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 중에 유태인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전체적으로 30%에 이른다. 평화상은 상의 성격상 유태인의 비율이 낮지만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은 20~30%를 차지하고 경제학상은 무려 60%나 차지한다. 게리 베커, 폴 새뮤얼슨, 밀튼 프리드먼, 케네스 애로 같은 노벨경제학자들이 모두 유태인이다. 인지심리학을 경제학에 접목하여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 역시 이스라엘 출신이다.

그런데 왜 노벨경제학상에서 유태인의 비중이 그렇게 높은 것일까. 유태인의 두뇌가 뛰어나다는 것만으로는 해석이 충분치 않다. 유태인은 일찍이 16세기, 17세기부터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태동될 때부터 자신들이 자본주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학문적으로 다루는 경제학이야말로 자신들이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더 그런 것은 아닐까.

유태인의 특징으로는 어떤 점이 있을까. 우선 유태인의 명석한 두뇌, 광적인 교육열, 부지런한 근로의식, 악착 같은 생활력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사람과 유사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와는 달리 모계를 중시하는 전통에 따라 여성의 주도적 역할이 돋보인다. 또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유태인의 강한 단결력이 두드러진다. 일찍부터 나라를 잃은 관계로 국제화가 상당히 진전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와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자본주의 경험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유태인들은 생존 차원에서 일찍부터 돈을 중시하고 축적하였다. 이지적인 판단력 측면에서 보면 유태인들은 한국인에 비해 더 뛰어나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유태교의 유일신 신앙 덕분에 일찍부터 자리잡아 신분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일찍이 조성되었다. 교육 환경을 보더라도 유태인은 탈무드에서 큰 영향을 받아 개인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탈무드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가르쳐준다.

그러면 유태인의 기업들로는 어떤 곳이 있을까. 화장품으로는 에스티로더, 헬레나 루빈스타인, 레블론, 부르조아가 있고 가방으로는 샘소나이트, 패션으로는 리바이스, 게스가 있다. 주류로는 시그램, 제너럴푸드, 사진으로는 코닥, 폴라로이드, 제록스가 있다. IT 기업으로는 IBM, 델이 있고, 금융업으로는 골드만삭스, 리만 살로먼,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 로스차일드, J.P. 모건, 록펠러재단이 있다. 유통업으로는 니만마커스, 블루밍데일, 메이시, 마샬필드, 라파예트, 시어즈로벅, 그리고 관광/렌탈로는 클럽메드, 허츠가 있고 건설로는 벡텔이 있다. 언론으로는 로이터, 타임, 뉴스위크,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뉴스&월드 리포트, CNN, CBS 등 부지기수다.

영화산업의 경우를 보자. 미국의 영화 7대 메이저로는 엠지엠(MGM), 20세기폭스,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워너, 콜럼비아, 디즈니를 꼽는다. 이중에 디즈니만을 제외하고 6대 메이저 영화사가 모두 유태인이 설립한 회사다. 현재 디즈니는 유태인 로버트 아이스너가 회장으로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탁월한 상상력과 응용력에다 경제적 수익성 마인드까지 갖춘 유태인의 기질이 영화 산업 장악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태인들은 영화라는 매우 재미있고 강력한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이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달하려는 욕구가 매우 강했다. 십계와 삼손과 데릴라, 벤허,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쉰들러 리스트가 바로 그런 영화다.

유태인들이 생업으로 삼고 있는 업종을 보자. 1차 산업인 농업이나 광업, 2차 산업인 제조업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보다는 유통물류업, 금융업 같은 3차 산업인 서비스업에 훨씬 많다. 그리고 두뇌를 많이 쓰는 변호사, 교수, 의사, 회계사, 언론인 같은 4차 산업인 지식산업에는 더욱 많다.

왜 그럴까. 자신들이 어느 나라에 정착해 있기는 하지만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가지고 움직이기 쉬운 업을 택했기 때문이다. 유태인과 타협하지 않고서는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보석업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보석은 부피가 작지만 가치가 매우 높은 관계로 유태인들이 일찍부터 보석업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석보다 움직이기에 더욱 좋은 것은 자신의 몸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자신의 두뇌에 차곡차곡 담을 수 있는 고부가 지식 서비스를 중시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태인들이 20세기 후반 들어 지식 사회가 되면서 더욱 파워를 발휘하고 있는데 이는 지식을 평소에 강조하는 유태인의 핵심 역량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벤처회사의 국적을 살펴보자. 제일 많은 곳은 중국계 기업이고 그다음이 인도계, 세번째가 이스라엘계 기업이다. 이들 이스라엘계 기업들은 원천 기술과 제품 개발은 본국인 이스라엘에서 하고 실리콘밸리에 미국 회사를 설립한 후 미국에서 제품 사양 결정과 마케팅과 자본 조달을 한다. 본국인 이스라엘 시장이 좁기 때문에 자신의 핵심역량을 갖춘 다음 자본 시장과 판매 시장이 넓은 미국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이다. 벤처 회사를 새로 설립하지 않고 미국 회사를 아예 인수하는 데 있어서도 이스라엘 기업은 매우 적극적이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제약업체인 테바는 미국의 제약회사인 아이백스를 최근 인수했다. 또 시가전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를 따라 코너샷 홀딩스라는 이스라엘 기업은 총이 꺾이도록 하여 건물 모퉁이에서 몸을 피한 채 총을 발사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했다. 이 이스라엘 기업은 미국 기업가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세계화 시대에 맞는 기업 전략이다.

과거에 여러 나라에서 핍박을 받던 유태인들이 이제 이스라엘을 기반으로 하여 엄청난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왜 그럴까. 유태인들은 개인적으로는 명석한 두뇌, 집단적으로는 끈끈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강력한 것은 유태인 뒤에는 그들간의 탄탄한 인맥과 돈줄과 미디어가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WTO, FTA 체제를 맞아 나라간의 장벽이 크게 낮아짐에 따라 유태인의 파워는 더욱 막강해질 전망이다. 이러한 코스모폴리타니즘(Cosmopolitanism)은 유태인들이 매우 원하는 세계 시스템이다. 세계화를 적극 추진해야 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유태인으로부터 배우고 또 유념해야 할 점이 정말 많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겸 이마스(emars.co.kr) 운영자

* 이 글은 기아차 사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