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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력신기업, 애플

2006년 4월 비즈니스위크지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의 순위를 매겼다. 3위는 3M이었고, 2위는 그 유명한 구글이었다. 1위는 어떤 회사였을까. 바로 애플이었다. 영국 태생으로 1992년부터 지금까지 애플에 근무해온 조나단 이브스(Jonathan Ives)는 아이맥, 아이북, 파워북, 아이팟 등 애플 히트 상품을 만들어낸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이다. 이 디자이너는 최근 영국에서 민간인 최고 명예인 CBE(Commander of British Empire) 작위를 받았다.

애플사는 2001년에 뮤직플레이어인 아이팟(ipod)을 출시하여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히트상품 지위를 구가하고 있다. 아이팟은 IT 세계에서 핵심 성공요인이라고 말하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컨텐츠를 통합한 멋진 통합기기이다. 최대로 압축된 소형 외관, 탁월한 유저 인터페이스, 대량의 저장용량으로 대변되는 하드웨어, 효율적인 소프트웨어, 그리고 소비자가 음악 컨텐츠를 불법이 아니라 아이튠즈(itunes) 온라인 스토어에서 당당하게 유료로 사도록 한 것이 아이팟 성공의 큰 축이었다. 물론 아이팟 성공의 배후에는 애플사의 탁월한 마케팅, CEO 스티브 잡스의 후광 효과, 매니아 고객층도 중요했지만 여기서는 아이팟 제품 디자인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아이팟의 하드웨어 디자인

우선 하드웨어를 보자. 아이팟 하면 직사각형의 깔끔한 외관과 원형의 휠(Wheel) 모양 메뉴버튼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컬러와 장식도 매우 절제되어 있어 미니멀리즘(Minimalism)적인 디자인도 돋보인다. 사용의 간편함,많은 음악을 저장할 수 있는 대용량 하드도 아이팟의 특징이다. 아이팟은 1세대부터 그 동안 꾸준히 진화 발전하여 이제 아이팟 비디오 중심의 5세대까지 진화발전했고, 앞으로 6세대가 곧 나올 예정이다.

특히 2005년 9월에 출시한 아이팟 나노(ipod nano)는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유해물질 사용을 금지하는 RoHS 기준을 통과했다. 이 아이팟 나노 모델은 일본 니케이 에콜로지에 의해 2006년 1월의 환경상품으로도 선정되었다. 아이팟 나노는 두께가 6.9mm, 무게가 42g에 불과해 명함 크기 정도이다. 하지만 저장 용량이 4기가바이트(GB)여서 이 초박형 패키지에는 약 1,000여 곡의 노래와 2만 5천 장의 사진을 저장할 수 있다. 예전이었다면 엄청난 양의 카세트테이프나 수십 장의 CD가 필요했을 것이다. 고집적 저장 기능을 가진 아이팟 나노가 그만큼 자원을 절약시키고 있다는 점이 환경상품으로 선정된 이유였다.

아이팟의 조그마한 하드웨어를 보면 내부에 여유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디자인이 알차게 짜여 졌음을 알 수 있다. 주 회로판을 포함하여 하드웨어 디자인은 애플사 자체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포탈플레이어라는 회사에서 만들었다. 이 회사는 휴대용 디지털 뮤직 플레이어부터 거실용 대형 오디오까지 각종 디지털 오디오 제품 용 디자인을 만들어온 경험 많은 회사이다. 아이팟의 다른 부품들도 애플사 자체가 만든 부품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얇은 충전용 배터리는 소니 제품이고 하드 드라이브도 도시바 제품이다. 다른 주요 부품들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샤프전자, 울프스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여러 기업 제품들이다. 이처럼 요즘 회사들은 품질 좋은 여러 부품들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소싱하고 잘 패키지 하여 멋진 제품을 만들면 된다. 제품 전체를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물론 주 회사의 핵심역량이다.

아이팟의 소프트웨어 디자인

소프트웨어 부분을 보자. 아이팟의 인터페이스 또한 실리콘밸리의 벤처 회사인 픽소(Pixo)의 휴대폰용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픽, 메모리관리, 데이터베이스 기능 등 기본 요소를 픽소가 애플사에게 제공했다. 그리고 아이팟의 운영체계도 픽소가 제공했다. 물론 서열식 구조의 스크롤이 가능한 아티스트, 노래, 장르 메뉴 등 아이팟의 세련된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낸 것은 애플의 디자이너이다.

아이팟은 채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뚝딱 만들어진 기기이다. 애플사는 여러 다른 회사들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아 제품을 조립했고 여기에 뛰어난 산업디자인과 단순하면서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디자인으로 아이팟을 완성시켜 히트시킨 것이었다.

아이팟의 독특한 기능 중에 셔플(shuffle) 기능이 있다. 음악을 저장한 순서에 따라 음악이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랜덤)로 재생 순서가 정해지도록 한 기능이다. 물론 랜덤재생 기능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CD플레이어에서 이미 선보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CD플레이어에서는 소수의 곡만 있기 때문에 그 기능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곡을 아주 많이 저장할 수 있는 아이팟에서는 이 랜덤재생 기능이 진가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한마디로 주크박스인 셈이다.

아이팟의 독특한 디자인 마케팅

아이팟은 본체도 유명하지만 액세서리도 유명하다. 특히 이어폰은 긴 줄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데 미국에서 아이팟 사용자들 사이에 흰색 이어폰이 큰 인기를 끌었다. 어폰은 보통 검정색이나 회색인 경우가 많았는데 아이팟 사용자들이 흰색 이어폰을 너도 나도 사용하는 바람에 흰색 이어폰은 아이팟의 2차적 상징이 되어 버렸다.

아이팟은 스타를 활용한 마케팅도 효과적으로 전개했다. 데이빗 베컴이나 마돈나, 락그룹 U2 멤버들의 싸인을 아이팟 뒷면에 새겨 한정판매를 했다.

이외에도 운동이나 몸을 움직이는 활발한 일을 할 때 아이팟을 팔에 고정시키는 아이팟 암밴드도 있고, 아이팟을 넣을 수 있는 남성용 팬티도 판매되고 있다. 하물며 핑크색 아이팟이 프린트된 브래지어도 있다. 이처럼 액세서리 상품군은 아이팟 덕분에 상당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아이팟 인기를 더욱 부추기는 기능도 톡톡이 담당하고 있다.

아이팟을 알리기 위한 책으로 [컬트 브랜드의 탄생, 아이팟]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앞 표지를 보면 사람 머리를 밀어 아이팟 휠 디자인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책의 목차를 포함하여 전체적인 디자인도 아이팟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느낌을 충분히 전달해줄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아이팟에 대한 책의 디자인도 아이팟의 디자인 컨셉과 일치시켜 마케팅 효과를 올렸다.

근거 있는 소문에 의하면 아이팟의 멋진 디자인은 앞서 말한 포탈플레이어 회사의 토니 파델(Tony Fadell)이 담뱃갑 크기의 아이팟 디자인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1990년대 말에 소니의 자회사인 아이와(Aiwa)와 함께 MP3플레이어 작업을 하여 소니에게 견본을 만들어 주기도 했는데 소니가 이를 무산시킨 적이 있다. 소니가 이 때 이 제품 디자인을 수용했더라면 MP3 플레이어 시장은 그 후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을까. 어떤 상품이 히트를 치고 나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돈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낼 수 있고 디자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아이디어를 수용하여 멋진 제품을 만들고 이를 탁월한 마케팅으로 히트상품을 이루어내는 것이 진짜 사업의 능력이 아닐까. 애플이 바로 그런 능력을 가진 회사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겸 이마스(emars.co.kr) 운영자

* 이 글은 KTF 사보 < Goodtime Cafe> (2006년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