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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화처럼 넓은 개념은 없다. 손에 꽉 잡히거나 훤히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상당히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문화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가 나라마다 다른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나라의 역사와 의식 구조, 정치 체제, 경제 수준에 따라 문화가 다른 것이다. 우리가 소위 일본의 집단주의, 미국의 실용주의, 독일의 합리주의, 이런 식으로 분류를 한다. 물론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크게 보아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별로 국가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그 구성원인 국민의 의식과 행태가 다르다는 것이고 이들이 모인 기업의 문화가 다를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글로벌화의 급진전으로 기업들의 행태가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해도 기업의 조직 문화는 여전히 중요하고 차이점이 있다. 조직 문화는 매일 변하는 날씨 같지는 않지만 기후처럼 나라와 조직, 개인에 부지불식간에 미치는 효과가 강력하다.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집단주의가 왕성하다고 보통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식 문화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어떤 기업이 있을까. 토요타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윤석철 교수에 의하면 어떤 기업이 일류기업이 되려면 세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기술, 마케팅, 조직이 바로 그것이다. 기술로 세계 일류기업이 된 곳으로는 독일의 기술 중심 중소기업들을 들 수 있고, 마케팅으로 세계 일류기업이 된 기업은 나이키를, 조직으로 세계 일류 기업이 된 곳으로는 바로 토요타를 들 수 있다. 조직 측면에서 볼 때 토요타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토요타의 특징이 일본 문화를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을까.

우선 효율적인 생산시스템을 들 수 있다. 토요타의 생산 시스템은 자동차업계의 모범답안과도 같았던 대량생산방식(Mass Production)을 택하지 않았다. 유연생산방식(Flexible Production)을 과감하게 도입한 것이다. 잘 알듯이 대량 생산은 어느 한 부분에 결함이 발생했을 때 불량품이 대량 발생하게 되고 작업이 단조로워져 개별 노동자의 생산효율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토요타는 일찍이 1953년부터 조립에 필요한 부속품들을 칸반(Kanban)이라는 컨테이너에 담아서 조립라인으로 전달하는 칸반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컨테이너내의 부속품들이 모두 소모가 되면 다시 이전 조립단계로 컨테이너를 보내게 되고, 이는 컨테이너에 담겨 있던 특정 부속품들이 더 필요하다는 시그널이 된다. 이로 인해 각 생산단계별 부품의 흐름과 부속품의 결함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일본인들의 면모가 잘 나타나 있다.

둘째, 토요타자동차의 놀라운 노사협력은 이제 가히 신화적이다. 1950년 초에 50일간의 노사분규를 거치면서 경영진 전부와 노조원의 25%에 해당되는 1,500명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도산 위기를 맞아 창업자 도요다 기이찌로는 회사를 관리은행으로 넘겨주지만 같은 해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그 이후 토요타는 지금까지 55년간 한번도 노사분규를 겪지도 않았고 해고도 없었다. 회사와 종업원간에 신뢰가 구축되어 조직문화로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 토요타는 많은 흑자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노조는 임금동결에 합의했다. 무한경쟁 시대에 1등 회사로 우뚝 서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하는 일본 문화가 잘 나타난다.

셋째, 토요타자동차는 부품업체와의 협력이 매우 견고하다. 토요타는 자체에서 부품을 생산하지 않고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부품 공급 회사들과 계약을 통해서 부품을 공급받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상호 결속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부품 공급회사의 일부 지분을 취득하거나, 부품 공급회사와 계약기간을 5-10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새로운 자동차 모델을 만들 때 개발단계부터 함께 협력한다. 이로 인해 토요타가 보유해야 하는 부품 재고의 양이 줄어들어 재고비용이 감소하게 되고, 소규모의 부품회사들이 토요타보다는 노동 임금이 적기 때문에 인건비도 절감된다. 또 개별 부품의 전문성이 확실히 보장되므로, 각 부품에 대한 기술적인 숙련도와 기술 개발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이 또한 독불장군처럼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서로 협조하는 일본 조직 문화가 잘 배어나 있다.

넷째, 이러한 토요타의 조직문화는 농경민족 특성과도 연결된다. 물론 토요타는 조직적인 측면외에도 탁월한 측면이 많다. 예를 들면 토요타는 한 지역에 정착해 사는 농경민족 특성이 많다. 농경민족은 기마민족과는 달리 보수적이고 행동이 굼뜨다.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것도 즐겨하지 않는다. 일본과 외국의 여기저기에 공장을 설립하는 닛산과 달리 토요타의 공장은 아이치 현 토요타시 미시마 지구를 중심으로 반경 10킬로미터 이내에 거의 다 있다. 자동차 기업 도시로 미국에는 디트로이트 시가 있고 이탈리아에는 토리노 시가 있지만 토요타 시처럼 하나의 도시에 이처럼 자동차 관련 공장들이 효율적으로 배치된 경우를 더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섯째, 자동차 개발 전략을 보더라도 토요타는 첨단 기술을 자랑하지 않는다. 100점이 첨단 기술이라고 한다면 토요타는 기술 수준 100점 만점으로 볼 때 80점 정도로 상대적으로 평범한 기술을 채택하지만 전체적으로 성능이 뛰어난 차를 만든다. 즉 첨단 기술을 탑재한 차가 아니라 검증된 기술을 탑재하여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는 대중적인 차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 출시한 자동차 모델이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을 개선하여 모델의 외장을 대폭 바꾸거나 가격을 인하하고 특별한 사양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그리고 그다음 모델을 바꿀 때에는 이러한 문제점을 철저히 반영시킨다. 끊임없는 개선과 후속처방이 튼 특징이다.

해외지향적인 닛산과 혼다와는 달리 토요타는 내수 중심이다. 내수 중심의 일본 경제정책과도 궤를 같이 한다. 필자는 지난 12월에 일본 도쿄 오다이바 빅사이트에서 개최된 에코프로덕트(eco-product) 전시전에 다녀왔다. 빅사이트 인근의 메가웹스테이션에는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카가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저속 운행시에는 전기를 사용하다가 고속 운행시에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카 덕분에 토요타의 미래는 매우 밝다. 미국처럼 교통 체증이 심하지 않아 운행중 브레이크를 덜 밟는 경우에는 혼다식 하이브리카의 에너지 효율이 더 높다. 하지만 교통 체증이 심한 일본식 교통 환경에서는 토요타의 에너지 효율이 더 높다. 토요타는 내수 중심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특히 도요타는 환경 경영을 외치는 첫번째 기업은 아니었지만 환경 경영이 큰 대세임을 읽고 곧장 상용화하기 어려운 연료전지 보다는 현실적인 하이브리드카로 방향을 잡아 전력 매진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약간 느리지만 일을 철저히 하는 일본인의 특성이 잘 반영되고 있다고 본다.

우리가 일본문화의 특징 하면 개인보다는 집단, 사무라이 정신,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이중적인 혼네, 첨단성보다는 실용성, 창조보다는 모방 등 여러가지를 말한다. 물론 일본 문화의 이러한 특징을 일본 모든 기업에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톡톡 튀고 기술지향적인 소니보다는 기술적으로 무난하고 대중적인 파나소닉이 일본 문화에 더 어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닛산보다는 토요타가 일본 문화에 더 어울린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리드애리더 대표 김민주

* 이 글은 기아자동차 사보 <함께가는 세상>(2006년 1월)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