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주 대표가 11월에 사례분석가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2013-11-17)


 
  안녕하세요.
리드앤리더의 김민주 대표입니다.

어제는 아주 친한 친구들과 함께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팔당대교 근처의 산에 다녀 왔습니다. 이 부근의 산이라고 하면 예봉산과 운길산이죠. 저는 용산역에서 출발해 중앙선 도심역에서 친구들을 만나 4시간 동안 트레킹을 해서 운길산역까지 걸어 왔죠. 아침 10시에 출발했는데 처음에는 안개도 끼었는데 나중에는 안개가 걷혀 날씨가 좋아지더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예봉산과 운길산 정상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두 산 사이의 새재를 거쳐 그리 험하지 않은 길을 타박타박 걸은 거죠.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적절히 있어서 담소를 나누며 걷기에 좋았어요.

새재를 거쳐 조금 내려오니 아라크노피아 수목원이 있더군요. 사실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친구 중 한 명이 이 수목원 안에 있는 주필거미박물관을 보더니 자신이 예전에 다녔던 학원의 생물 선생님이었던 김주필님이 세운 박물관이라며 한 번 들어가 보자고 하더군요. 가서 보니 정말로 맞더군요. 이 분은 전 세계의 수만 종의 거미들을 모아 대영(EMI)학원에서 벌어들인 수입 중 500억 원을 들여 거미박물관을 만드신 겁니다. 나중에 동국대학교 생물학과 석좌교수가 되어 동국대학교 부설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계시더군요. 우리가 갔을 때 마침 김주필 박사도 계셔서 과거 학원 이야기도 하고 거미박물관을 짓게 된 이야기도 하며 즐거운 환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수목원 이름이 아라크노피아(Arachnopia)인데 아라크네가 어떤 뜻인지 아시죠? 바로 거미입니다. 아라크네라는 출판사 이름도 있지요. 제가 예전에 ‘레드 마케팅(Red Marketing)’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었는데 바로 이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해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이 남양주시 조안면인데 이 중에 조안리는 슬로시티로도 지정되었고, 바로 아래 능내리는 정약용이 예전에 거처하던 곳이어서 다산유적지로 조성되어 정약용 생가, 정약용 묘, 실학박물관이 있기도 하지요. 경관도 매우 빼어나 산책하기에도 좋지요. 연잎도 많이 생산해 연 재배하는 곳도 볼 수 있지요. 이 부근 길은 다산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실제로 정약용이 예전에 산보를 했다고 하는군요.

여러분이 잘 아시듯이 다산 정약용은 조선 3대 천재 중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지요.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연암 박지원도 열하일기, 허생전으로 유명한데 이 두 사람을 비교한 책 하나를 제가 보았습니다. 고미숙님이 쓴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가 바로 그 책인데 매우 재미있었어요. 이 분의 해박한 고전, 역사 지식과 매력적인 글솜씨가 대단하더군요. 두 사람의 인생관, 외모, 가문, 글솜씨, 학풍, 친교관계 등을 조목조목 비교했는데 매우 볼 만 합니다. 사실 제가 emars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비롯하여 다산의 ‘목민심서’, 연암의 ‘허생전’에 대해 서평을 이미 써놓았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은 emars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다산과 연암의 학파가 어떻게 다른지 아시지요? 다산은 영정조 시대에 이른바 중농학파이고, 연암은 중상학파이죠. 자세히 이야기하면 좀 복잡해지는데 조선시대 실학은 경세치용파라고도 부르는 중농학파, 이용후생파라고도 부르는 중상학파, 그리고 실사구시파 등 세 가지로 보통 나누어집니다.

이 세 학파 중에 중농학파가 제일 먼저 두각을 나타냈는데, 반계수록을 쓴 유형원, 성호사설을 쓴 이익, 경세유표를 쓴 정약용이 중농학파의 대표 인물이죠. 중농학파 실학자들은 백성들이 가난한 근본적인 이유를 토지 문제에서 찾았습니다. 일부 지주들이 토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대다수 농민들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해 가난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중농학파는 모든 개혁의 기초로 토지 개혁을 해야 민생을 안정시키고 부국강병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약용은 한 마을 단위로 하여 토지를 공동 소유, 공동 경작하고 그 수확량을 노동량에 따라 분배하는 공동 농장을 운영하자는 여전론(閭田論)을 주장한 바 있지요. 어떻게 보면 당시 지배계급의 이해와 충돌되는 집단주의적 발상이었죠.

그런데 당시 프랑스에도 중농학파가 있었다는 사실 아시죠? 18세기 후반 프랑스 루이 15세 당시 마담 퐁파두르의 주치의이자 왕 주치의였던 프랑수아 케네(Francois Quesnay)가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경세가, 지식인들과 교류를 하다가 인체의 혈액 순환 체계나 국가의 경제 체계가 비슷하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경제표’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중에 자연의 대표격인 토지가 모든 경제 활동의 근본적인 부가가치를 만든다고 생각해 중농주의(Physiocracy) 학파를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democracy)가 인민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듯, 중농주의는 ‘자연(Physios)에 의한 통치(Kratesis)’를 말합니다. 당시 프랑수아 케네(1694~1774)와 정약용(1762~1836)은 연령 차이가 많고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서로 교류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당시 농업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중농주의는 자연스러운 학파였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요즘 경제학자 하면 영어로 ‘이코노미스트(economist)’라고 하는데 이코노미스트의 어원이 바로 이들 중농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루이 14세 시대의 콜베르의 중상주의 정책 노선에 따라 농업보다는 상공업을 중시하는 중상주의자들이 훨씬 많았는데, 중농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철학과 정책이 그들과 다르다며 구분짓기 위해 스스로 에코노미스트(economistes)라고 불렀습니다.

케네는 자연법에 따라 자연으로부터 부가가치를 많이 얻어내는 농업을 중시해야 지주계급의 부가 늘어나고 그래야 소작인에게도 돈이 지급되어 생필품을 사게 되어 상공업자들도 먹고 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나중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지만 경제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체계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경제이론의 시작으로 봅니다.

그러면 현재는 어떤 사람들을 이코노미스트로 부르고 있을까요? 우리는 경제학자 하면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보통 연상하지만, 실제로 이코노미스트는 훨씬 광범위합니다.

첫째, 관변 이코노미스트가 있습니다. 정부와 관변 연구기관에 있으면서 관료로서 정부 정책을 실행하고 정책 실행을 보조하는 관변 연구소 소속의 이코노미스트이죠. 우리나라 재경부, 산자부, 그리고 정부 산하의 한국개발연구원(KDI),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이에 해당되지요.

둘째, 대학 이코노미스트가 있습니다. 이들은 학교에서 경제학 강의를 하면서 학술 논문을 쓰며 경제 관련 컬럼을 쓰면서 정부의 경제정책을 옹호 혹은 비판합니다. 물론 학교 이코노미스트는 정부의 정책 수립과 평가 자문에 응하기도 하지요.

셋째, 언론 이코노미스트가 있습니다. 이들은 신문, TV, 포털 등 미디어에 소속되어 경제 상황과 경제 정책을 대중에게 알리고 비평도 합니다. 일부 논설가, 파워블로거들의 파워가 매우 세기도 합니다. 또 언론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경제 관련 책을 써서 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도 하지요.

넷째, 이해단체 이코노미스트가 있습니다. 사회에는 기업, NGO 등 여러 이해단체들이 있는데 그들의 이해를 옹호하고 홍보하기 위해 그들의 논리를 개발하는데 이런 작업에 참여하는 이코노미스트이죠. 예를 들면, 전경련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은 대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케네는 관변 이코노미스트이면서 중농주의라는 하나의 학파를 만든 사람이죠. 대학 이코노미스트로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해당되는데, 폴 새뮤얼슨, 게리 베커, 로버트 루카스 같은 사람입니다. 물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관변과 대학에서, 밀튼 프리드먼은 대학과 언론을 드나들며 활동을 했습니다.

정리하자면, 관변 이코노미스트는 실행 측면에서, 대학은 연구 측면에서, 언론은 비평 측면에서, 이해단체는 자신의 이익 측면에서 경제를 들여다 봅니다.

오늘은 남양주 조안면에 트레킹을 갔다가 중농학파 정약용, 케네 이야기, 그리고 이코노미스트로 이야기가 흘러갔군요. 다음 번 글에서는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흘러갈지 저도 모르겠군요.

그럼, 한 달 후에 또 뵙겠습니다.

김민주 드림
리드앤리더 대표 겸 이마스(emars.co.kr) 대표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