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효과 (2013-05-12)


 
  -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이 만든 르네상스

최근 들어 창의력,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인문학과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전문가의 저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분야의 전문가는 자신만의 관점에 함몰돼 새로운 변화에 둔감해지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고갈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전문 분야의 사람들만 자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이질적인 사람들을 만나야 세상 트렌드를 따를 수 있고 놀라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행운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지식이나 재능을 지닌 사람이 만나, 전혀 다른 분야의 것들이 서로 교차, 융합해 창조와 혁신의 빅뱅을 이루는 것을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라고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서로 다른 수많은 생각들이 한 곳에 만나는 교차점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프란스 요한슨(Frans Johansson)이 2004년에 발간한 그의 책 《메디치 효과》에서 이 개념을 자세히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을 메디치 효과라고 불렀을까요? 15세기와 16세기에 꽃의 도시 피렌체의 재력 있는 메디치 가문이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 예를 들면 화가, 건축가, 조각가, 과학자, 철학자, 작가, 종교인, 상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금전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후원하여 르네상스 시대를 활짝 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기 때문입니다.

메디치(Medici)가 Medicine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 가문이 원래 의술과 연관이 있다는 설도 있고, 가문의 문장이 알약처럼 보인다 하여 환전상 출신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가문의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가 모직업으로 번 돈으로 1397년에 은행업에 진출했다는 사실입니다. 메디치 은행은 가문은 교황청의 거래은행이 되면서 피렌체 공화국과 토스카나공국의 지배자로서 굉장한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조반니 데 비치의 아들인 코시모, 그리고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에 이르면서 메디치 가문은 경제적, 정치적 리더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리더로서 르네상스에 불씨를 지폈습니다. 이 때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은 예술가는 대단히 많았는데 베로키오, 도나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필리포 브루넬레스코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특히 코시모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철학자들이 정기 학술 토론회를 열게 하면서 중세를 지배하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극복하며 신플라톤주의를 르네상스에 도입하였습니다. 플라톤 아카데미의 운영규칙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였습니다.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자유분방하게 터진 것입니다.

- 실제 현실에서의 메디치 효과

그러면 실제 비즈니스에서 메디치 효과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요?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던 건축가 믹 피어스는 한 부동산 회사로부터 흥미진진한 주문을 받았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전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에어컨이 없는 쇼핑센터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호기심 많은 건축가 믹 피어스는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피어스는 생물학자와 만나 호주에서 몸길이가 6mm 밖에 되지 않는 흰개미들이 자신들의 몸길이의 1,000배에 달하는 6m 높이의 개미집을 짓고 사는데, 그 실내가 일정한 온도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흰개미들은 땅속과 지면 위에 통풍구를 가진 모래 탑을 세운 뒤 맨 위쪽의 통풍창을 열고 닫아 내부온도를 조절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믹 피어스는 에어컨 대신에 지붕을 활용해 외부기온이 40도 이상 올라가는 찜통더위에도 쇼핑센터 내부는 서늘하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생물학자와 건축가라는 이질적인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교차점에서 혁신을 일구어 낸 것입니다.

메디치 효과를 제대로 맛보려면 단일 분야의 팀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 구성된 팀을 구성해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수학자, 고전학자, 언어학자, 과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해 독일 해군의 이니그마(Enigma)라는 난공불락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 브랜드인 루이비통은 스타 디자이너가 아니라 팝 아티스트인 무라카미 다카시와 만나 무라카미 백을 만들었습니다. 창의적인 작품으로 사랑받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개미》, 《나무》, 《인간》, 《파피용》은 그 기저에 과학적 사고가 깔려 있습니다. 문학과 과학이라는 인문학과 이공학의 교차점을 정확히 짚어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입니다.

메디치는 피렌체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시애틀에도 메디치가 있는데 바로 폴 앨런(Paul Allen)입니다. 빌 게이츠처럼 시애틀 토박이자 고등학교 동창인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를 함께 창업했는데 나중에 자신의 지분을 팔아 벤처캐피탈 회사, 불칸(Vulcan)을 만들어 많은 벤처회사에 투자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벌어들인 돈으로 시애틀의 부흥을 위해 문화, 과학, 스포츠 분야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문화 분야로는 최고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를 추모하는 EMP, 시네라마 극장에 투자를 했고, 과학 분야로는 앨런 뇌연구소, 스페이스쉽원, 사이언스픽션 박물관에 투자를 했습니다. 또 스포츠 분야로는 풋볼팀 Seahawks, 사커팀 Sounders, 농구팀 Trail Blazers에도 투자를 하여 시애틀을 한껏 풍요로운 도시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래서 인구 60만 명의 시애틀 시민들은 폴 앨런의 시애틀의 메디치라 부릅니다.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풍요로운 중견도시가 없는 것일까요?

최근 사회의 전반적 트렌드가 창조를 강조함에 따라 메디치 효과의 활용 범위가 갈수록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메디치 효과가 모든 창조․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에 무차별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최근의 메디치 효과는 융합과 교차점의 의미를 찾는다기보다는 동종 사업 내에서의 활용이나 기업의 소극적인 협업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기업은 혁신을 항상 강조합니다. 혁신을 해야 다른 기업과 차별화가 되고 경쟁우위를 선점하기 때문입니다. 혁신을 하려면 기업이 당면한 여러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창의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창의력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분방하게 생각하는 상상력 속에서 혁신이 시작됩니다. 메디치 효과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도 이제 메디치 효과를

15세기, 16세기 당시 피렌체의 인구는 6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현재도 35만 명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보면 융합은 규모가 무조건 크다고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규모가 작아도 개방적이고 끈끈한 관계 속에서 빅뱅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인구 천 만명의 서울이나 3백만 명의 부산, 인천, 대구가 아니라도 중견 도시에서 메디치 효과는 얼마든지 터질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도시에 재력만 있다고 메디치 효과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처럼 재력은 물론이고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말한대로 코시모 데 메디치가 만든 플라톤 아카데미의 운영규칙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방침을 갖는 곳이 얼마나 될까요? 재정 지원을 해주고 결과가 빨리 나오도록 간섭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메디치 효과가 도저히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준이 상당히 올라갔기 때문에 내버려 두어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 인류학, 미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30년전만 하더라도 주로 남성들만 미학을 전공했는데 이제는 여성 전공자도 크게 늘었습니다. 글로벌화를 하면서 오히려 여러 지역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이 필요해져 인류학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습니다. 아랍과 러시아에서 의료관광을 하러 오는 아랍인, 러시아인들이 늘면서 이들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메디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다양성과 개방성 분위기가 깔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양한 전공자들이 우리 사회에 생기고, 이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메디치 효과가 터지는 것입니다.

신용카드는 사실 디자인과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신용카드는 모든 결제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어떤 실체는 신용카드라는 플라스틱 카드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현대카드는 다른 신용카드 업체와는 신용카드의 디자인에 신경을 썼고, 자체 서체도 개발하는 독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업의 차별화는 눈에 보이는 것에 있다는 것을 잘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폴리매스(polymath)라는 말이 있습니다. 뛰어난 지능을 보유하며, 여러 분야에 걸쳐 폭넓게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는 박식가를 말하는데, 르네상스 맨(Renaissance man), 혹은 유니버설 천재(universal genius)라고도 부릅니다. 고대 과학자의 대부분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박식가에 해당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괴테,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뉴턴, 라이프니쯔, 프랜시스 베이컨, 벤자민 프랭클린, 석주명, 신사임당, 정약용, 알베르트 슈바이처도 모두 박식가입니다. 최근 들어 여러 학문을 아우르는 통섭이 중요해지면서 이런 사람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데, deep한 지식을 서로 연결해 wide하게 볼 필요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폴리매스가 되도록 비전을 정해 노력을 해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