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주 대표가 1월에 사례분석가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2013-01-16)


 
  이마스(emars) 사례분석가 여러분 안녕하세요.
리드앤리더의 김민주 대표입니다.

요즘 붐을 타고 있는 ‘레미제라블’ 영화 많이 보셨지요?

어떻게 보셨나요? 환상적이었나요? 아니면 정말 지루하셨나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특히 영화 앞 부분에서 팡틴과 장 발장이 고난을 겪을 때 눈물이 더욱 쏟아지더군요.

하지만 제가 아는 어떤 분들은 이 영화에 대해 낮은 평가를 내리기도 하더군요. 모든 대사를 전부 노래로 하는 바람에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보통 말은 대화로 하고 감정 넣고 싶을 때에는 노래로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이처럼 평가가 엇갈릴 수는 있습니다. 만약 이번 뮤비컬 영화에 불만을 가졌다면 그런 분들은 리암 니슨이 장 발장으로 나온 1999년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노래가 하나도 없이 대사로만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이죠.

2013년 1월 13일 개최된 제7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레미제라블은 3관왕이 되었더군요. 코미디.뮤지컬 부문에서 작품상을 받았고, ‘장 발장’ 역의 휴 잭맨은 남우주연상을, 팡틴’ 역의 앤 해서웨이는 여우조연상을 받았으니까요. 이들이 보통 영화에서 상을 받는 것과 뮤비컬에서 상을 받은 것은 차원이 분명 다르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립싱크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성으로 정말 노래를 불렀기 때문입니다. 자베르 경감 역할을 열심히 한 러셀 크로우는 다른 배역에 비해 노래 실력이 좀 처졌는데 상을 못 받았습니다.

이번 영화의 제작자는 다름아닌 카메론 매킨토시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대박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잡은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을 모두 제작한 인물이죠.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초연은 1985년이었는데, 지금 2013년까지 28년간 지속되고 있으니 대단한 실적이죠.

카메론 매킨토시는 뮤지컬을 영화로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킹스 스피치(2011)’ 영화를 만든 톰 후퍼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여 뮤지컬 영화를 찍었습니다. 그렇게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후회할 뻔 했겠죠.

제가 며칠 전에 케이블TV에서 봤는데, 2010년에는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레미제라블 뮤지컬 공연 25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공연을 했습니다. 정식 공연을 멋지게 한 후에 초연 당시 출연진들이 나와 노래 일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뮤지컬과 영화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도 나와 소감을 말했고, 작사가 허버트 크레츠머도 나오더군요. 더구나 공연 날은 빅토르 위고 탄생일이었다고 하니 그 의미는 더욱 컸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가 1862년이었습니다. 최근에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구입한 민음사 판 ‘레미제라블’ 1권의 서문을 보니까 빅토르 위고가 그 해 1월 1일에 이렇게 썼더군요.

‘법률과 풍습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문명의 한복판에 지옥을 만들고 인간적 숙명으로 신성한 운명을 복잡하게 만드는 영원한 사회적 형벌이 존재하는 한,
무산계급에 의한 남성의 추락, 기아에 의한 여성의 타락, 암흑에 의한 어린이의 위축, 이 시대의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계급에 사회적 질식이 가능한 한,
다시 말하자면, 그리고 더욱 넓은 견지에서 말하자면,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책 같은 종류의 책들도 무익하지는 않으리라.’

서문이 짧기는 하지만 좀 어렵죠?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사회에 어두운 부조리가 있다면 이 책의 가치는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이 영화가 2012년 12월 대선 전에 상영되었다면 대선 판도가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그런데, 빅토르 위고가 이 서문을 쓴 곳은 어디였을까요? 영불해협에 있는 영국령 건지(Guernsey) 섬의 오트빌 하우스에서 썼습니다. 책이 출판되는데 빅토르 위고가 왜 이 섬에 체류하고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 당시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제정 정치에 반대하여 영국으로 망명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책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 위고는 출판사에 전보로 ‘?’라고 쳤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답장이 왔습니다. ‘!’ 한마디로 대박이었던 것이죠.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로 돌아오라는 나폴레옹 3세의 부탁을 단호히 거절하고 9년 후인 1871년에야 귀국했습니다. 그때 나폴레옹 3세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대패하여 황제 자리에서 실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빅토르 위고는 상원의원도 되었고 프랑스 국민에게 국민영웅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런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영국인에게 셰익스피어라면 프랑스인에게는 빅토르 위고지요. 우리나라에는 과연 누가 이에 필적할까요?

그럼, 한 달 후에 또 뵙겠습니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