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 건축의 거장, 프랭크 게리 (2012-09-10)


 
  5년 전에 시애틀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시애틀의 Experience Music Project(EMP)라는 건물에 갔는데 이 공간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1942~1970)를 기리기 위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 멋진 공간은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던 폴 알렌(Paul Allen)의 재원으로 세워졌다.

시애틀의 메디치라 불리는 폴 알렌은 역시 시애틀 출신인 지미 헨드릭스를 매우 좋아하여 계속 그를 후원하여 왔으며 그래서 Experience Music Project이라는 뮤직 뮤지엄을 독특한 디자인으로 시애틀 센터에 지었다. 그런데 이 건물의 외양은 곡선 모양으로 매우 특이했다. 그 때만 하더라도 필자는 누가 그 건물을 설계했는지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것이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은 직선을 모른다.’ 직선은 효율성을 좋아하는 인간이 만들고 신은 곡선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대 건축을 보면 온통 직선으로 이루어진 장방형이다. 프랭크 게리는 이러한 직선 위주의 건물설계를 부정하여 곡선으로 건물을 짓는 해체주의 건축을 주창한다. 시애틀의 EMP 건축물도 이런 노선을 따른 것이고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도 그런 노선을 따랐다. 이 빌바오 건물은 그를 세계적인 반열로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공황이 시작되었던 192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가족과 함께 1947년에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LA에서는 트럭운전사로도 일했고 가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벌었다. 그리나 향학열이 높아 남가주대학과 하버드 디자인대학을 다니면서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했다. 그는 유태인이기 때문에 건축가 클럽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이름을 프랭크 오언 골드버그에서 프랭크 게리로 1954년 바꾸었다.

캐나다에서 가구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합판, 판지, 체인 같은 재료들을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후 그는 그 동안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비롯하여 수 많은 상을 수상하고 세계 여기저기에 수 많은 건물을 지었다. LA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MIT 내의 뒤틀린 스타타 센터, 뉴욕 맨해튼의 주상복합건물인 비크만 타워,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의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과 BP Bridge, 프린스턴대 피터루이스 과학도서관, 마이애미의 뉴월드 심포니, 스코틀랜드 던지의 암환자센터인 매기센터, 토론토의 온타리오아트갤러리,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이 대표적이다.

프랭크 게리는 2012년 9월 한국에 들러 종묘도 들르고 리움에서 비공개 강의도 했다. 필자도 참석했는데 그는 곡선 형태의 건물이 설계하는 데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 텐데 어떻게 설계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는 벌써 25년 전에 컴퓨터로 설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IBM에 문의를 했더니 비행기 설계하는 데 사용하는 3D 솔루션 소프트웨어인 카티아(Catia; computer-aided three-dimensional interactive application)를 만드는 회사, 다쏘시스템을 소개받았다. 그런데 이 소프트웨어는 매우 복잡하여 카티아를 기반으로 하여 건물 설계용으로 개조했다.

그는 건축용 솔루션을 만드는 게리 테크놀로지(Gehry Technologies)를 설립해 '디지털 프로젝트(Digital Project)'라는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솔루션을 만들고 이 솔루션을 지금까지 25년 동안 계속 사용하고 있다. 이 소프트웨어는 매우 효과적이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설계를 척척 해치울 수 있고 그것도 적은 비용으로 가능하다. 이렇게 만든 소프트웨어는 자신과 매우 친한 자하 하디드 (Zaha Hadid)를 비롯하여 자신의 건축 동료들과 같이 공유해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의 회사는 다쏘시스템과 오토데스크와 협업하고 있다. 이들은 가끔 만나서도 일을 하지만 클라우드(cloud)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일을 매끄럽게 하고 있다.

프랭크 게리는 자신이 죽고나서도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영향을 주는 건축물을 만들기를 원한다. 그래야 진정한 건축가라고 믿는다. 일시적인 유행을 따르는 것은 쉽지만 가치는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몇 차례 오면서 오랫동안 미를 인정받는 청자, 백자 같은 한국 도자기에 매료되었다. 그는 몇 년만에 서울에 다시 왔는데 그 사이에 서울에 고층빌딩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모두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 계획 덕분이다. 하지만 모두 밋밋한 디자인의 건물이고 한국의 전통을 반영한 건물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설계한 것 중에 한국 정서에 맞는 것이 있다고 은근히 자신을 홍보하기도 했다.

1929년에 태어 났으니 그의 나이 이제 83세다. 자신의 아들이 몇 명 있는 데 그 중의 한 아들은 건축가여서 자신이 은퇴한 후에 자신이 살 집, 게리하우스의 설계를 그 아들에게 맡겼다고 했다. 하지만 건축 설계가 완료되고 집이 지어진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은퇴를 하고 그 집에서 살 지는 모르겠단다. 자신은 아직 은퇴를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