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주 대표가 6월에 사례분석가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2012-06-23)


 
  emars 사례분석가 여러분 안녕하세요.
리드앤리더의 김민주 대표입니다.
제가 지난 주에 프로젝트 때문에 경북 안동에 갔습니다.
이 곳에 가서 양진당의 종부님과 지례예술촌의 촌장님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느낀 점을 글을 써서 보내드립니다.
여러분도 나중에 한 번 가보세요.


요즘 고택 체험이 인기를 끌고 있다. 멋있고 깨끗한 호텔, 리조트에 가서 하루를 묵는 것이 이제 지루해진 사람들에게 남루하지만 정취 있는 고택에서 하루 밤을 보내는 것이 점차 인기를 끌고 있다. 고택은 대부분 자연환경과 문화환경이 뛰어나 감성이 풍부해진다. 더구나 종갓집 고택에 가면 그 집안에 서려 있는 전통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집안을 지키는 마나님인 종부와 대화를 하면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이번 주말에 내가 방문했던 안동의 양진당과 지례예술촌을 중심으로 한 번 보자.

안동의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의 집성촌이다. 고려 말기에 관직을 맡았던 풍산 류씨가 나중에 안동으로 터전을 옮겼다. 이 중에 양진당은 대종택으로 유명하고, 양진당 옆에는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이 있다. 현재 양진당의 종부는 이정숙님이다. 이 집의 대청에는 많은 대소사가 열리는데 종부는 이 모임을 두루 주관한다. 이 집에는 제비들이 둥지를 틀고 있어 내가 종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제비들이 수시로 날아다닌다. 때때로 둥지에서 알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

안동에는 여러 유명한 성씨들이 있는데 의성 김씨도 그 중 하나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네 번째 아들이 고려 왕건으로부터 경북 의성 지역에 식읍을 받고 의성 김씨가 되었다. 의성 김씨 가문이 운영하는 곳으로 지례예술촌이 있다.

안동의 동쪽에 위치한 지례예술촌에 가는 길은 꼬불꼬불하고 험하다. 그래도 지금은 길이 제대로 나고 포장된 길도 많아져 훨씬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정말 고생 길이었다. 한 번은 프랑스 대사 부부를 지례예술촌으로 차로 모신 적이 있었는데 이 부부는 자신들을 납치한 줄로 오해했을 정도다. 더구나 한 밤중에 오면 공포감에 사로잡혀 그런 생각은 더욱 심해진다. 이 집의 주인인 김원길 촌장에 의하면 밤에 이 집에 도착해 화를 낸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수려한 풍광을 보고 기분이 풀어진 사람 또한 한두 사람이 아니다. 가는 길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해가 저물기 전에 가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첩첩산중이다 보니 이 집에는 곤충이 많다. 특히 모기가 많은데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모기가 훨씬 줄어들었다. 집에서 키우는 박쥐 때문이다. 박쥐는 모기를 잡아 먹기 때문이다. 하루에 모기를 2천 마리나 먹어 해치운다고 한다. 이 집에서 키우지는 않지만 미꾸라지는 모기 유충을 많이 잡아 먹는다.

지례예술촌은 의성 김씨인 김방걸의 후손 집이다. 이 집안 사람들은 성대 출신이 많다. 유교와 관련이 많기 때문이다. 역시 성대 출신의 김원길 시인이 촌장과 대표를 맡으며 현재 운영하고 있다. 원래 강가에 고택이 있었는데 인근에 임하댐이 세워지면서 집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집 전체를 뒷산으로 이전시켰다. 이전 되기 전에 다행히 문화재로 지정되어 정부가 지정하는 전문가의 도움으로 제대로 이전할 수 있었다. 이전 비용은 집안이 댔다. 지례예술촌에 가면 옛집 터를 아직 볼 수 있는데 요즘처럼 가뭄이어서 수면이 많이 낮아졌을 때에만 볼 수 있다. 이 고택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옥을 마음대로 개조를 할 수가 없다.

이 집 터는 완벽한 풍수지리설에 입각해 정해졌다. 임수배산에 입각해 앞에는 강, 뒤에는 산이 있고, 좌청룡우백호로 양측에 약간 높은 구릉이 있다. 그리고 오른 편 저 위쪽으로는 오똑한 봉우리가 있는데,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른다. 문필봉이 주위에 있으면 집안에 문인들이 배출된다고 한다. 촌장인 김원길님도 시인이어서 지례유사라는 시집을 냈다. 최근에는 이 시집에 실린 54개 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프랑스 출판사에서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집은 어떻게 하여 지례예술촌이 되었을까? 지례(知禮)는 논어에도 나오는데 예절을 안다는 의미다. 집을 이전하려 할 무렵, 이 집에는 손님이 한 분 오게 된다. 김원길 촌장의 한 제자가 우연히 미국에서 40년만에 한국에 온 우리나라의 소설가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가는 소설 ‘꽃신’으로 당시 유명했다. 이 소설가 때문에 당시 미국에는 예술촌(artists’ colony)이 15군데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술가들이 때때로 와서 작품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그의 멋진 아이디어에 힘입어 새로운 부지에는 예술촌 콘셉트의 공간이 만들어졌고, 나중에 시인 구상을 비롯하여 많은 문인, 서예가, 화가들이 기거하며 작품을 생산했다. 지례예술촌이 조성된 다음에 이 소설가는 이 곳에 와서 한 달 동안 기거했지만 생활의 불편함 때문에 더 이상 체류하지는 못했다.

지례예술촌은 외국인에게도 많이 알려져 외국인 손님들로 붐빈다. 이번에 내가 하룻밤을 보낼 때에도 외국인이 5명이 있었다. 이 중 한 미국인은 예술사 전공자인데 한옥에 대해 정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불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이 해프닝을 벌이기도 한다. 옷장 속에 이불이 많이 쌓여져 있는 것을 본 에쿠아도르에서 온 어떤 외국인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옷장 속의 이불을 침대로 착각하고 아예 옷장 속에서 몸을 웅크리며 잠을 청했다. 지례예술촌에는 방이 15개 있고 홈페이지(jirye.com)에서 방을 예약하면 된다. 방의 크기와 조망에 따라 4개의 가격대가 있다.

이 집은 1년에 10번 제사를 치른다. 요즘은 보기 드문 전통 방식으로 제사를 하기 때문에 내가 갔던 그날 밤에 방송국에서 와서 제사 장면을 촬영했다. 제사 장면을 보려면 언제가 제삿날인지 알고 가야 한다.

안동 외에도 고택은 많다. 집안마다 스토리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고택을 시리즈처럼 순회하며 집안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김민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