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올림픽의 영웅 기보배, 기성용, 그리고 기대승 (2012-08-05)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여자 양궁이 쾌거를 올렸다.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개인전에서도 기보배 선수가 멕시코의 로만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것도 마지막 슛오프(shoot off)에서 같은 8점을 따고서도 기보배의 화살이 과녁 정중앙에 더 가깝게 꽂혀 더욱 우리를 흥분케 했다.

기보배 선수는 이번에 남자 양궁 금메달을 딴 오진혁과 서로 사귀고 있다고 하여 더욱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두 사람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연을 맺었는데, 기보배 선수의 홈피에는 ‘넌 내 삶에 활력소야’라는 글귀를 지금까지 올려놓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박성현과 박경모가 올림픽이 끝난 후 결혼을 했는데 이번에도 결혼으로 이어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만약 성사가 되면 정말 또 하나의 ‘신궁 커플’이 될 것이다.

언론은 금메달을 딴 그녀를 보배라며 치켜 올렸는데, 나는 ‘보배’라는 이름보다도 ‘기’라는 성에 더욱 관심이 갔다. 기(奇)씨 성이 흔한 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보배 선수는 고향이 전북 고창이고 현재 광주광역시청 소속 선수다.

올림픽 축구팀에서 미드필더로 멋지게 활약하고 있는 기성용 선수도 기씨 성이고 고향이 광주다. 영국과의 8강전 경기에서 마지막 5번째 승부차기에서 영국의 스터리지가 실패한 반면에 기성용은 멋지게 골을 넣어 4강 진출의 수훈갑이 되었다.

기보배, 기성용 두 사람의 공통점은 성이 기씨로 같다. 그리고 모두 광주나 그 인근 지역 출신이거나 그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기씨 성이 광주 지역과 어떤 연관성은 없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우리나라 기씨 성의 본관은 행주기씨 하나다. 행주(幸州)는 경기 고양시에 있는 행주산성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런데 두 선수는 왜 모두 광주 지역과 관련이 있을까? 그 때 나는 조선 중기의 큰 유학자였던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을 떠올렸다. 그는 중종 때 태어나 명종과 선조 초기에 조정에서 성균관 대사성, 대사단, 공조참의로 활약했다. 또 그 보다 나이가 26살이나 많은 대유학자 이황과 함께 사단칠정론을 가지고 대토론을 했고 이황의 주리설(主理說)에 대항해 주기론(主氣說)을 주장했던 탁월한 유학자였다. 그의 그는 왕으로부터 큰 신임을 받아 선조에게 제왕학을 가르치는 경영강론도 했는데 이 내용은 선조 어명에 의해 편찬된 ‘논사록(論思錄)’에 담겨 있다.

그런데 기대승(1527~1572)이 바로 전남 광주 지역에서 출생했다. 그의 조상은 근거지가 경기도였다. 중종 때 왕에게 신임 받아 개혁을 추진하던 조광조를 비롯하여, 김정, 김식, 기준 등 소장신진사림파 28명이 1519년 기묘사화 때 남곤, 심정, 홍경주 등 훈구파에 밀려 제거당하게 된다. 기대승의 작은 아버지인 기준은 기묘사화 당시 이조판서였다가 화를 입게 되자 기대승의 아버지인 기진은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자리로 내려와 이곳에서 1527년 기대승을 낳게 된다.

탁월한 학문 실력을 지닌 기대승은 그 후 23세에 사마시를 보았으나 기묘사화와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당시 시험관인 윤원형의 방해로 낙방하기도 했다. 하지만 28세에 동당향시에서 장원을 하고 33세에 문과 을과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승승장구 한다.

특히 과거에 갓 급제를 한 기대승은 성균관대사성이었던 이황을 방문하여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 후 사단칠정에 대해 이황과 무려 8년간 편지로 논쟁을 한다. 사단(四端)은 ‘측은, 수오, 사양, 시비지심’을 마하며 칠정(七情)은 ‘희노애락애오욕’을 말한다. 이황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입각하여 사단과 칠정은 다르다는 주장이었고, 기대승은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 입각하여 양자가 같다는 주장이었다. 두 사람의 주장은 서로 타협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황은 기대승의 학문에 크게 탄복하여 그를 통유(通儒)라며 임금 선조에게 강추(strongly recommended) 하였다.

이황은 성균관대사성 벼슬에서 물러날 적에 선조 임금이 지금 학문을 한 사람이 몇이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황은 이렇게 답했다.

“학문에 뜻을 둔 선비는 지금도 없지 않습니다. 그 중에도 기대승은 널리 알고 조예가 깊어 그와 같은 사람을 보기가 드무니, 이 사람은 통유(通儒)라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런 추천에 힘입어 기대승은 성균관대사성에 올라 선조 임금 때 경연에 참여하여 왕도정치에 입각해 제왕학을 가르친다. 하지만 주위의 질시에 의해 한양에 있기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귀향하던 중 갑자기 종기가 생겨 전북 고부에서 그만 병사하고 만다. 기대승의 병 소식을 듣고 선조는 약을 지어 보냈으나 이미 늦었다. 선조는 모든 장례 비용을 보내 임곡동 너부실에 안치하도록 했다.

기대승의 13대손은 현재 광주에서 살고 있다. 고봉 기대승은 광주의 월봉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선조가 기대승으로부터 제왕학을 제대로 배웠으니 실천만 제대로 했었다면 임진왜란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배움과 실천은 다르다.

런던 올림픽에서 큰 활약을 한 기보배, 기성용은 모두 행주기씨다. 조선 중종때 광주 지역으로 낙향한 행주기씨는 탁월한 유학자 기대승을 배출했다. 행주기씨는 경기도에 종중이 있지만 전남 북부, 전북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자손들이 퍼져 있다.

기씨의 시조는 기우성(奇友誠)으로 마한 원왕(元王)의 아들인 우성이 온조백제에 가서 기씨 가문을 열었다. 기씨 성을 가진 사람은 2000년 인구센서스에서 24,385명으로 집계되었다. 그런데 이 중에 두 사람이 런던 올림픽에 나가 멋지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기씨 파이팅!!!


* 혹시 기대승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아래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기대승: 조선 성리학의 이론가, 황의동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8
고봉 기대승이 들려주는 사단칠정 이야기(고급편), 이지영 지음, 자음과 모음, 2007
성리학자 기대승 프로이트를 만나다, 김용신 지음, 예문사원, 2002


글 :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이사 겸 이마스(emars.co.kr) 대표운영자)